Dolbegae Book Letter
행간과 여백 _No. 2 / 240821
∥ Contents
1. '책 안목' 갖고 싶다면
2. 책의 '첫 인상', 북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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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안목' 갖고 싶다면
_엄지혜 (인스타그램@koejejej)
책을 열심히 읽는 사람에게도 추천하기 머뭇거려지는 책이 있다. 바로 서평집. 신문에 실린 짧은 서평은 좋은 책을 찾을 수 있는 유용한 방법이지만, 단행본으로 묶인 두꺼운 서평집을 읽을 때면 세련된 쇼룸을 방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괜찮은 책들을 알게 된 것 같은데 타자의 독서를 훔쳐본 느낌이라 여운이 짧다. 하지만 종종 어떤 작가를 신뢰해서 또는 좋아해서 서평집을 읽고 한다. 쉼보르스카의 『읽거나 말거나』 같은 책. 평소의 나라면 좀처럼 집어 들지 않을 책들을 책 속에서 만나면 묘한 희열까지 느낀다. 편협한 내 독서 목록이 확장되는 기분이랄까.
『서평가의 독서법』은 비평 분야 퓰리처상을 수상한 ‘영미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서평가’ 미치코 가쿠타니의 유일무이한 서평집이다. 38년 동안 <뉴욕타임스> 서평 담당 수석기자로 활동한 그는 독설가로 유명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수전 손택, 마거릿 애트우드 등의 특정 작품을 두고 독설을 서슴지 않았기 때문. 그럼에도 세계의 저자, 독자 들은 그의 서평을 언제나 기다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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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설 서평가의 책은 얼마나 살벌할까. 하지만 이 책은 미치코 가쿠타니가 쓴 책 중에 허들이 가장 낮다. “비평가보다는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엮은 책이기 때문이다. 그는 서문에 “가능한 폭넓은 독자들이 이 책들을 읽거나 다시 읽도록 권유(22쪽)”하기 위해 책을 펴낸다고 밝힌다. 『백년의 고독』, 『유혹하는 글쓰기』, 『시녀 이야기』, 『나의 눈부신 친구』, 『랩 걸』, 『아메리카나』 등 마땅히 들어봤음직한 고전부터 동시대 작가의 소설, 논픽션, 회고록 등을 아우른다. 내가 읽은 책이든 제목조차 알지 못한 작품이든, 일단 독자들을 박력 있게 끌고 간다. “이 책에 이런 배경이?”, “읽고 싶네, 쩝”과 같은 메모를 주석처럼 달아 놓는 자신을 발견하게 만든다. 지적인 독서가 가능한 책이다.
2024년 괜찮은 독서 목록을 갖고 싶다면 『서평가의 독서법』을 책장에 꽂아 두고 독서할 책을 선택해도 좋겠다. 미치코 가쿠타니가 선택했으니 무조건 믿을만한 책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내가 놓쳤던 고전의 작품 세계, 서평의 기승전결은 어떻게 끌고 가면 좋은지, 능숙한 산문이란 무엇인지 매우 유용한 참고서로도 제격이다. 그는 첫 문장 하나로 독자를 집중시킬 줄 아는 작가다. 뻔한 도입이 없다. 목차를 꼼꼼히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무인도에 가져갈 책”, “책에 관심 있는 체하는 아버지”, “아무것도 내버릴 게 없는 소설” 등. 엄청나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제목 아닌가? 몇 편의 제목은 소설 제목으로 차용해도 좋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각 글의 제목은 편집자가 넣었다고 한다.
“책읽기는 우리 모두를 이민자로 만든다. 우리를 고향으로부터 멀리 데려간다. 하지만 더욱 중요하게, 어디서든 우리의 고향을 찾게 해준다.”
_『서평가의 독서법』, 23쪽
미치코 가쿠타니의 글에 매력을 느꼈다면 최근작 『거대한 물결』을 이어 읽어도 좋다. <뉴욕타임스>를 은퇴한 후 쓴 첫 정치문화비평서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에서 가짜 뉴스와 음모론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시대를 읽어냈다면, 『거대한 물결』에서는 신자유주의의 지속 가능성에 문제를 제기한다. 디스토피아 소설에 자꾸 손이 가는 이유를 두고 미치코 가쿠타니는 “현재가 당혹스럽고 재앙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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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한여름이 곧 지나고 가을이 온다. 한 작가의 책 세 권을 독파하는 경험도 흥미롭지 않은가. 믿을 만한 번역가가 세 권의 책을 연이어 번역했으니 낯선 흐름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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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De:sign
북디자인은 책의 첫인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귀한 선물을 신문지에 둘둘 싸서 줄 수 없듯이 귀한 책이라면 마땅히 조화로운 겉모습을 갖춰야 합니다. 여기 두 권의 책이 있습니다. 강렬한 표지 때문에 책이 더 궁금해지는 『서평가의 독서법』과 2024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국에서 가장 좋은 책’으로 선정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두 책의 표지를 디자인한 김민해 디자이너에게 작업 후기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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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표지를 봤을 때 조금 놀랐습니다. 책 제목을 바로 읽지 않았다면 ‘서평집’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서평가의 독서법』은 김혜영 편집자님과 작업한 책이에요. 편집자님이 책에 일러스트를 넣고 싶어 하셔서 어울릴 만한 작가를 함께 생각했는데 이빈소연(@leebinsoyeon) 작가님이 잘 맞을 것 같았어요. 이 책만큼은 다른 후보가 생각나지 않더라고요. 사실 서평집을 생각하면 당연히 책이 떠오르고 그 소재를 벗어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책’의 이미지가 좀 낯설어 보여도 색다르고 밀도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작가님을 찾고 싶었어요. 표지를 보셔서 아시겠지만 이빈소연 작가님의 작업이 개성이 뚜렷하고 강렬한 느낌인데요. 미치코 가쿠타니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작가님의 개성을 충분히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한 발 더 나아간 독특한 세계를 보여주셨어요. 그림을 보자마자 이 책은 유니크한 분위기의 책이 될 거라고 확신했죠. 좋은 그림은 조금은 낯설어도 결국엔 설득이 되잖아요.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담당 편집자님과 미감이 잘 맞아 참 즐거웠던 작업이었어요.
원화를 그대로 싣진 않았어요.
원화를 그대로 넣어서 디자인해보니 그림에 어떤 서사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더라고요. 소설의 표지 같은 느낌도 있었고요. 그렇다고 가로로 긴 이미지를 표지 판형에 맞게 축소하려니 원화의 웅장함이 살아나지 않았어요. 고민 끝에 그림을 잘 활용하되, 묵직한 인문서 느낌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싶어서 대비를 활용한 디자인으로 표현해 봤어요. 이렇게 넣고 보니 원화의 웅장함을 놓치는 게 너무 아까워서 표지 바로 뒤에 면지 접지로 원화를 넣었습니다.
표지 종이도 예사롭지 않아요. 만지는 맛이 있는 책입니다.
사실 매우 평범한 종이예요. 아르떼 울트라 화이트에 무광 코팅으로 작업했는데요. 이 종이가 특별해 보이는 건 에폭시 후가공 때문일 거예요. 에폭시가 매끈한 것만 있지 않고 질감이 다양하거든요. 디자인 자체도 정확한 대비를 활용한 디자인이고 각각의 느낌이 다른데요. 질감이 같으면 재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질감도 대비되는 면이 서로 다르게 느껴지면 좋을 것 같아서 후가공을 넣었습니다.
본문 디자인도 독특하더라고요. 각 챕터의 제목을 가운데 정렬하고, 텍스트 바로 밑이 아닌 조금 위에 밑줄선을 넣은 것도 색달랐습니다. 밋밋하지 않은 디자인이라 제목에 더 눈길이 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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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표지 디자인을 위주로 책을 만들고 있는데요. 이 책은 본문까지 작업한 책이에요. 처음 원고를 받았는데 각 챕터의 글 제목의 텍스트 양이 제각각이더라고요. 잘 읽혀야 하는 부분이라 가독성 있게 정직하게 넣되 너무 뻔해 보이는 건 피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생각해 낸 방법이 글 상자를 벗어나게 제목을 넣는 방식이었어요. 그리고 상단에 선을 둬서 이 텍스트가 기준을 벗어났다는 것을 더 잘 보이도록 디자인했어요. (여기서 기준이라고 하는 건, 본문 글 상자의 시작 부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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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든 책
_《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_김민해(인스타그램@kimmminhae) X 엄지혜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는 작년에 출간된 돌베개의 책들 중 꾸준하게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책이죠.
그러고 보니 이 책도 김혜영 편집자님과 작업했네요. 이 책은 제목부터 많은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제목 자체가 저에게도 진짜 궁금한 물음이 되었거든요. 원고를 읽어보니,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은 자기 길을 잘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크게 두 가지가 떠올랐는데 첫째는 성장과 가난이었습니다. ‘성장’이라는 것이 흔히 계단을 오르는 일에 많이 비유되는데, ‘가난’이라는 환경적 제약이 그 계단을 더 많이, 혹은 더 가파르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이들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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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의 텍스트를 더 곱씹게 만드는 표지입니다.
표지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에 스스로 몇 가지 제한을 뒀어요. ’가난’하면 아무래도 어둠을 많이 떠올리는데, 이 책은 어둡게 표현하지 말자는 것. 그리고 ‘가난’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이미지는 사용하지 말자는 생각이었어요. 책에 나오는 학생들은 자기 삶에서 희망을 보고 있기 때문에 이 책에서만큼은 ’가난’에 대한 클리셰를 사용하는 게 싫었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는 것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에서 ‘가난’이 매우 중요한 키워드지만, 아이들이 현실을 헤쳐 나가는 과정과 자신의 미래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지가 더 중요하니까요.
텍스트로 계단을 형상화하셨어요.
일단 이 책에서 ‘계단’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는데요. 평균 세 글자 정도로 제목과 부제, 저자명의 띄어쓰기가 딱 떨어지더라고요. 제목 글자들을 활용해 계단을 만들고 그 길을 아름답게 표현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봤죠. 글씨 위의 백박에도 세부적인 이유가 있지만 큰 맥락은 같습니다.
평소 타이포그래피를 활용해 디자인할 때, 염두에 두는 것이 있나요?
많은 디자이너들도 비슷한 생각을 할 텐데요. 의미가 없는 건 되도록이면 화면에 두고 싶지 않아요. 타이포그래피도, 그래픽도 내가 디자인하려고 했던 것과 의미나 맥락이 맞아떨어질 때 가장 그 콘텐츠다운 작업물이 되는 것 같아요. 항상 고민하는 건 무엇인가를 화면 위에 올리려고 할 때, 이것을 둬도 될지, 그렇다면 왜 두어야 하는지에 관한 생각들이에요.
책 제목과 부제의 중요도가 비슷하게 읽히는 면도 인상적이었어요.
이 책은 텍스트로 하나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 자체가 중요한 디자인이었어요. 그래서 텍스트 크기 외에 다른 방식의 구분법을 적용했어요. 저는 전체적인 화면의 균형을 중요시하는 편인데요. 이것보다 항상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이 책만의 이유 있는 분위기이에요. 그것을 위해서 이미지든 타이포든 아니면 책의 무드 자체든, 강조해야 할 것들을 제대로 두드러지게 하는 작업이 저에게 가장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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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습, 불교를 말하다
박희병 지음 | 504쪽 | 145*225mm
2024. 8. 26 출간예정
『금오신화』라는 불후의 명작을 남긴 김시습은 유자일까, 승려일까. 율곡 이이의 ‘심유적불’ 평가 이래로 대부분의 학자, 심지어 현대 한국학 연구자들은 이 평가를 준신한다. 박희병 교수의 이 책은 기존의 김시습 연구의 오류와 오독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문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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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를 껴안는 기분
최상희 지음 | 212쪽 | 140*210mm
2024. 8. 27 출간예정
한국 청소년문학을 대표하는 감수성, 최상희 작가의 신작 소설집 『우주를 껴안는 기분』은 ‘미래’라는 시간, ‘외계 행성’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7편의 소설을 엮었다. 청소년 독자들이 현실 속 차별과 혐오를 ‘문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성찰할 수 있도록 이끄는 작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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