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lbegae Book Letter
행간과 여백_No. 4 / 24.10.23
∥ Contents
1. 신해철, 나는 그가 좋았다 / 강헌
2. 표지 투표는 대체로 곤혹스럽습니다만...
3. [연재] 작가의 말들 #1 한강 / 엄지혜
4.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인가 / 사적인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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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_작가의 안부를 묻다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
신해철, 나는 그가 좋았다
표지를 꽉 채운 세 글자. 음악평론가 강헌이 쓴 『신해철』은 두고두고 잊히지 않는 책 중 하나입니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어떤 전율을 느꼈거든요. 오래 전 인터뷰 현장에서 딱 한 번 신해철을 대면했습니다. 육체적으로 무척 지쳐있었던 그였지만 달변가란 이런 사람이구나를 체감했죠. 한 사람으로의 신해철이 더 궁금해졌고 그의 음악세계를 깊이 알고 싶었지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고, 2014년 가을 신해철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추모했지만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을 온전히 알기 어려웠을 때, 『신해철』을 읽었습니다. 예측 불가능한 뮤지션으로 읽혔던 신해철의 삶이 비로소 이해됐습니다. 왜 이토록 사랑 받는 사람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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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 27일은 신해철의 10주기입니다. TV에서는 다큐멘터리를 방송했고 동료, 후배 뮤지션들이 참여하는 ‘신해철 트리뷰트 콘서트’가 열릴 예정입니다. 작가님은 10월을 어떻게 맞이하고 계신가요? 작가님의 근황도 궁금합니다.
자신의 시간은 느리고 타인의 시간은 빨리 흐른다더니 벌써 10년이네요. 그때 전 병원에 한 달 넘어 입원하다 퇴원 3일 전날 밤 해철의 마지막 전화를 받았지요. 그리고 퇴원해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켠 PC 화면에 떠오른 해철의 부고. 10월이면 그 날 오전 11시의 황망함이 떠오릅니다. 제 근황은 별로 얘기할 게 없네요. 줌 강의하고 상담하고 음악 듣고 글 쓰고 가끔 여행 다녀오고, 그렇게 지냅니다.
2018년 『신해철 :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이 출간됐죠. 오랜만에 책을 다시 꺼내니, 먹먹했던 감정이 고스란히 떠올랐습니다.
이 책은 그의 평전 같은 형식을 빌었지만 제가 쓴 책 중에서 유일하게 철저히 사적인 책입니다. 그의 갑작스런 죽음이 도저히 실감나지 않아서 어떤 기획도 없이 두 달 동안 방에 박혀 그의 앨범들을 되풀이해서 듣고 들으며 그와의 모든 기억들을 소환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그의 영전에 바치는 내 나름의 조문입니다. 바로 출간하지 않은 것은 그의 유고집이 나왔기 때문에 그 책을 사람들이 먼저 읽기를 바랐기 때문이고, 그래서 3주기에나 발표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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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서점에서 한 독자의 리뷰를 읽었습니다. “내가 신해철을 좋아하고 그의 음악을 들은 지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야 비로소 그 노래들을 한층 더 깊이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쓰실 당시, 어떤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하셨나요?
저는 동네 형이나 학교나 직장 선배로서가 아니라 음악평론가로서, 뮤지션인 신해철과 처음 조우했습니다. 그 관계의 본질은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변하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그와는 그 관계를 넘어 제가 그의 작업의 스태프가 되기도 했고 제 프로젝트에 그는 뮤지션 혹은 동료로서 이리저리 얽히기도 했습니다. 일련의 과정에서 몇 년의 나이차를 넘은 친밀한 혹은 때때로 논쟁적인 인간적인 관계가 형성되었죠. 『신해철』에 그와의 모든 일을 넣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해도 저는 아직도 그와의 모든 작업들이 하나하나 의미 있었기 때문이에요.
당시도 지금도 뮤지션이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일은 흔치 않습니다. 살아생전 신해철 씨는 대마초 합법화, 간통죄 폐지 등을 주장하며 과감한 사회적 발언을 이어갔습니다.
어쩌면 그는 한국 대중문화사에 등장한 최초의 폴리테이너이자 논객일 것입니다. 그의 논지 모두를 동의할 순 없지만 자신의 인기 유지를 위해 입을 다물어야 했던 이른바 ‘연예인의 침묵’의 사슬을 깨뜨린 그의 태도는 진정으로 존중합니다. 해철이 떠난 지 10년이 흘렀음에도 그의 지위는 여전히 독보적입니다. 그는 스타 이전에 뮤지션이었고 뮤지션 이전에 한 사람의 시민이었습니다.
『신해철 : In Memory of 申海澈 1968-2014』은 한 인간의 치열한 삶을 고스란히 담은 책입니다. 신해철의 음악을 좋아하든 관심이 없든, 누가 읽더라도 마음 한구석을 움직일 것입니다.
저의 책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책이 아주 약간이라도 쓰임이 있다면 혹시 아직도 그의 노래를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나 아주 희미하게 경험한 사람에게 꼭 그의 음악을 들어보라고 정중하고 간곡히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음악이 언제까지라도 사람들 가슴속에 남아 있기를, 조금이라도 더 오래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하나의 작은 몸부림에 불과하겠죠. 그의 노래는 자신의 삶과 진정으로 마주하고 싶지만 그것이 힘들어 불면의 밤을 맞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작은 힘이 되어줍니다.
다시 한 번 신해철 씨와 인터뷰할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싶나요?
신해철은 강한 것에 터무니없이 강하고 약한 것에 어이없이 약했던 인물입니다. 밤부터 새벽까지 (그러고 보니 밝은 낮에 그와 만난 적은 공연 말고는 거의 없군요) 그와 나누었던 모든 얘기들 중에 95%는 아마도 수다였을 겁니다. 그와의 수다는 그와 내가 힘든 터널을 통과하고 있을 때조차도 시간 가는 줄 모를 정도로 흥미진진했습니다. 딱 한번만 더 아무 맥락도 없는 수다를 밤새 떨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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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커버가 궁금했던 『관타나모 키드』가 도착해 소파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막 학교에서 다녀온 아이가 말하더군요. “엄마, 표지 예쁘다. 나 이 책 봐도 돼?” 흠칫 놀랐습니다. 그리고 대답했죠. “너 좀 보는 눈 있구나! 읽어 봐.” 아이는 손도 안 씻은 채 한 시간을 꼼짝도 하지 않고 책에 집중했습니다. “와 재밌다! 그리고 표지가 마음에 들어.” 초등학생 아이가 한 권의 책을 두고 이렇게 칭찬한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다음날에는 학교에도 들고 갔습니다. 디자인 후기를 듣지 않을 수 없어서 김민해 디자이너에게 메일을 띄었습니다.
드디어 『관타나모 키드』가 출간됐습니다. 알라딘 북펀드를 하면서 표지 2종을 공개해 독자 투표를 받았는데요. 내심 기대했던 시안이 있었나요?
솔직히 1안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두 시안에서 시각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부분이 각각 달랐거든요. 1안의 경우, 굴곡 있는 주인공의 삶을 표현하고 싶어서 제목 레터링을 했는데요. 2안은 작품 속 한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해 직관적인 느낌인데, 1안도 자연스럽게 스토리텔링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주인공이 새가 뚫은 구멍을 통해 교도소 바깥을 처음 보게 되잖아요. 표지에서도 그 구멍을 통해 바깥 세상으로 나간 주인공을 볼 수 있도록 표현해봤죠.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표지를 처음 보신 분들에게는 더 직관적이고 색도 강렬한 2안이 더 와 닿았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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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는 종종 표지 시안을 두고 독자의 의견을 듣곤 합니다. 독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이벤트지만, 디자이너의 입장에서는 조금 곤혹스러운 마음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평소에는 표지 투표를 안 좋아하죠. 하지만 이번에는 어떤 표지가 돼도 괜찮았어요. 왜냐면 두 시안 모두 책의 의미를 잘 녹여냈다고 생각했거든요. 의외였던 건 2안이 이렇게 압도적으로 득표를 얻을 줄은 몰랐어요. (웃음) 펀딩을 하기 전, 주변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그때는 1안이 대부분이었거든요. 그래도 탈락한 1안이 사은품 커버로 나왔고, 2안의 그림이 주인공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어 아쉬움은 없습니다.
『관타나모 키드』는 관타나모 수용소의 최연소 수감자 ‘무함마드 엘 고라니’의 실화를 담은 작품입니다. 사실 역사적으로 매우 무거운 이야기죠. 하지만 선택된 2안의 표지 일러스트는 주인공의 익살스러운 표정이 눈에 띕니다.
이 책은 한 개인이 역사적인 사건에 휩쓸려 삶이 송두리째 달라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에요. 원서의 표지를 보면 주인공이 무력하게 서 있는 모습이어서 이렇게 역동적인 인물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런데 주인공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어도 쉽게 굴하지 않고 삶을 살아내는 아주 강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내 앞에 놓인 상황을 그대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목소리를 내서 현실을 조금이라도 바꿔버리는, 웃음으로 승화시킬 줄도 아는 인물이었죠. 그래서 지금의 일러스트가 이런 주인공의 성격을 종합적으로 잘 드러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책에서 죄수들은 ‘오렌지색’의 옷을 입고, 무죄 판결이 나거나 석방을 앞둔 사람은 ‘백색’의 옷을 입는다고 되어 있어요. 누가 봐도 억울하게 누명을 쓴 주인공은 무죄, 그에게 누명을 씌운 거대한 권력과 환경이 유죄였지만, 현실에서는 주인공이 죄인이 되어있었어요. 그래서 백색 옷을 입은 주인공이 무죄이고, 그의 인권을 제한하고 있는 것들이 유죄라고 바로잡아 이야기하고 싶어서 색을 반전시켰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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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의 표지 작업은 본문에 그림이 있기 때문에 접근하기 편할 수도 있고, 반대로 더 큰 상상력을 펼치기엔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정확해요. 때론 접근이 쉬울 수도 있고, 반대로 어려울 수도 있어요. 조금 더 수월한 경우는 원서의 표지를 그대로 사용해도 되거나, 표지에 사용할 본문 그림이 충분할 때예요. 그런데 이 책은 둘 다 아니었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스토리텔링이 될만한 것을 모두 모아 놓고 추려나갔어요. 물론 편집자님도 괜찮은 컷을 뽑아주셨고요. 본문의 작은 그림을 표지에 활용할 경우 무척 크게 확대해야 하기 때문에 마땅한 그림이 적었어요. 그래서 1안처럼 제목에 형태로써 힘을 주기도 하고, 2안처럼 괜찮은 그림은 확대하고 보정한 후 표지에 입혀 봤죠. 그 외 다른 시안도 제목 자체를 길게 늘여 감옥처럼 표현하는 등 그림보다 제목, 분위기를 강조한 경우였어요. 표지에 활용할 만한 그림이 많지 않아서 디자인적으로 더 다양하게 시도했어요. 표지 시안을 만드는 과정이 때론 쉬울 수도, 어려울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 책의 스토리텔링을 어떻게 보여주냐에 달려 있어요.
김태현 편집자님은 김민해 디자이너님의 작업을 보고 “과연 그 명성에는 이유가 있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었다”고 하셨어요. 편집자님과의 호흡은 어떠셨나요?
지난 레터를 보고 편집자님께 너무 감사했어요. 표지 작업을 하면서 고민했던 점이나 시각적으로 나타낸 부분을 이해하고 공감하셨다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생각했습니다. 서로를 인정해 줄 수 있는 동료를 만난다는 건 참 반가운 일이에요. 또 작업 과정에서 고민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주셔서 감사했어요. 시간이 많다고 무조건 좋은 결과물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김태현 편집자님이 돌베개에서 보여주실 세계들이 기대되고 동료의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그래픽노블 『관타나모 키드』의 매력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주신다면요?
어쩔 수 없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도 삶을 제대로 살아나가는 강인함에 대해 경외감을 느낄 수 있는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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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삶을 침착하게 보살피는
균형을 잡아보고 싶습니다.”
_한강, ‘포니정 혁신상 시상식’에서
한 달 전 청탁 받은 추천사 원고를 정리하다가 한강 작가의 수상 소감 전문을 읽었다. 10월 10일에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들었으니 딱 일주일 만이다. 한강 작가가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 통의동의 독립서점 ‘책방 오늘’은 당분간 문을 닫았지만, 곧 독자들을 만나겠지. 노벨문학상 열기는 언제까지 이어질까. 수년, 아니 수십 년 만에 찾아온 한국 출판계의 경사가 부디 작은 출판사, 작은 책방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데에도 영향을 미치길 바랄 뿐이다.
한강 작가가 제124회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속보를 본 날, 아이와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일터였던 서점을 떠난 지 일년이 지나서일까, 노벨문학상이 발표되는 날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초등학생 아들에게 “우리나라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탔어”라고 말하니 “엄마도 만난 적 있는 사람이야?”라고 물었다. 이윽고 “나도 나중에 노벨상 타볼래”라고 말을 보태는 아이를 보며 피식 웃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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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이 되겠지, 하지만 기쁨이 더 크겠지, 동시에 일상을 더 잘 살아가고자 노력하겠지, 얼른 이 환호가 그치고 잠잠해지기를 바라고 있겠지. 혼자 상상해봤다. 기자로 일할 때 여러 기자회견, 간담회를 다녔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질문 하나에 30분 넘게 답하는 저자도 있었고, 숫기가 없어서 모든 질문에 단답으로 대꾸하는 작가도 있었다. 내가 가장 기억에 남는 간담회는 2019년 시인 김혜순이 ‘그리핀 시 문학상(Griffin Poetry Prize)’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을 기념해 기자들과 만났던 자리. 한 기자가 “노벨문학상 수상도 기대할만하지 않냐?”는 질문을 하자, 시인은 정색하고 말했다.
“그런 이야기는 제발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노벨문학상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쓰냐?’는 물음은 시인과 소설가들에게 “당신은 이제 그만 글을 쓰세요”라는 뜻이다. 생각해본 적도 없고 들어본 적도 없는 말을 오늘 이 기자간담회에서 처음 듣는다.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우리나라 어떤 작가라도 괴로울 것 같다.”
아뿔싸. 기자의 질문을 듣는 순간 나도 괴로웠다. 하지만 김혜순 시인의 답을 듣고 후련했다. 우문현답이라는 말이 이래서 존재하는구나, 실감했다. 세상에 문학상을 기대하고 글을 쓰는 작가가 있을까. 물론 등단을 염두에 두고 문학상에 도전하는 사람이 있지만, 쓰고 싶어서 만들고 싶은 세계가 있어서 문학을 쓰는 것이지, 상을 위해 매일 고단하게 책상 앞에 앉는 작가는 없다.
과거에 나왔던, 또 미래에 나올 한강 작가의 모든 책에는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띠지가 붙을 것이다. 벌어진 사실이고 독자들에게는 중요한 정보다. 하지만 작가는 점점 더 고요한 시간을 만들고자 노력할 것이다. 일상을 살피는 균형 감각을 잃는 순간, 그가 지켜낸 문학의 방향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을 생각해 커피를 비롯한 모든 카페인을 끊었다는 한강 작가의 이야기를 읽고, 오늘도 연거푸 마신 나의 커피 두 잔을 떠올렸다. 카페인이 주는 각성 대신 고요하고 다정한 산책을 택한 작가의 신작이 벌써 기다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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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y Book, Buy Local _사적인서점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인가
_사적인서점(@sajeokinbookshop) 정지혜 X 엄지혜
파주출판단지의 이웃 ‘사적인서점’이 8주년을 맞았다. 단골들의 든든한 사랑과 격려로 파주에서 시즌4를 연 사적인서점은 정지혜, 정지수 자매가 운영하는 동네서점이다. 2016년 10월, 홍대입구에 입간판을 하나 걸고 대한민국 최초로 ‘책처방 프로그램’을 선보인 사적인서점은 이제 책 좀 읽는 독자들은 모를 리 없는 중견 동네서점이 됐다. 『좋아하는 마음이 우릴 구할 거야』, 『사적인 서점이지만 공공연하게』의 저자이기도 한 정지혜 대표에게 8년간 서점을 운영할 수 있었던 비결을 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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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동안 변화가 두렵지 않은 건 아니었어요. 다만, 이대로 사적인서점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그것보다 조금 더 컸던 것 같아요. 금전적인 어려움만 빼면 이보다 만족스러운 일은 없으니까요. 이게 내적인 이유라면 외적인 이유는 단연 단골손님들이죠. 사적인서점이 어디로 이사를 가든, 운영 방식이 어떻게 바뀌든, 이곳을 꾸려 나가는 저희 두 사람을 믿고 찾아와 주시는 손님들 덕분에 계속해 나갈 수 있어요. 시즌1부터 매달 한 달에 한 번씩 책 처방을 받는 단골이 계신데, 더 이상 이 분이 오시지 않으면 그땐 정말 서점을 닫아야 하지 않을까요. (웃음)”
지난해 가을, 출판계는 역대 불황이었다. 매년 어렵다고 말하지만 코로나 이후, 문을 닫는 오프라인 독립서점은 눈에 띄게 늘었다. 정지혜 대표는 지난 8년간 서점을 꾸려오면서 “이제 좀 살 것 같다”라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다.
“서점을 운영하기 힘들 때는 이겨내려고 노력하지 않아요. 예전엔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애를 쓰기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오히려 몸과 맘이 더 상한다는 걸 알았거든요. 열심히 하다가 지쳐서 다 포기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약해지지만 않는다면 괜찮은 인생이야』라는 그래픽노블을 좋아하는데, 책 제목처럼 지금은 더 강해지는 게 아니라 약해지지만 않으려고 해요. 그러다 보면 이번 한강 작가님의 노벨문학상 수상처럼 뜻밖의 기쁜 일이 생기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번 수상을 계기로 독서 붐이 오지 않을까요? 제발 왔으면 좋겠어요.”
섬세한 큐레이션으로 유명한 ‘사적인서점’은 책을 선별할 때 “우리가 읽고 싶은 책인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두 자매가 즐겁게 일하기 위해 만든 서점이기 때문에, 모든 기준점은 두 사람의 만족이다. 우리가 읽고 만족하는 책이어야 손님에게도 힘주어 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처방을 하고 있다 보니, 사람들의 고민에 도움이 될만한 책인가도 고려해요. 파주에서 시즌4를 열고 유독 많이 사랑 받은 책은 『우연의 질병, 필연의 죽음』입니다. 서점 한편에 ‘책방지기의 인생책’ 코너를 만들었는데, 그 중 하나였어요. 책방지기의 인생책이라고 하니 더 관심을 갖고 봐주시는 것 같아요. 돌베개에서 펴낸 책 중에서 제가 각별히 좋아하는 책은 엘리자베스 토바 베일리가 쓴 『달팽이 안단테』예요.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초조하고 우울할 때, 나만의 속도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떠올리게 해주는 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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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혜 대표는 사적인서점 인스타그램(@sajeokinbookshop)에 종종 ‘파주 여행 명소’를 소개하기도 한다. 늦가을에 추천하고 싶은 곳은 파주출판도시 근처에 있는 심학산이다. 참나무가 많아서 가을에 가면 도토리가 토독토독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고, 둘레길이 잘 조성되어 있어 산책하기도 좋다. 심학산 아래에는 맛집들도 많은데, ‘심학산도토리국수’에서 도토리쟁반국수와 도토리전을 먹으면 정말 끝내준다고.
최근 정지혜 대표는 세 번째 책을 탈고했다. 오랫동안 책처방사로 일하면서 터득한 독서법에 관한 이야기다.
“원래 책은 자기 자신을 위해 읽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책처방을 하니까 언젠가부터 자연스레 타인의 시선으로 책을 읽게 되더라고요. 저한테는 그다지 와 닿지 않는 책도 나와 다른 조건, 다른 취향을 가진 타인의 시선으로 읽으면 다르게 읽혔어요. 그러다 보니 전보다 책과의 교감 신경이 더 발달했다고 할까요? 책처방사는 어떻게 책을 읽고 또 처방하는지, 저의 영업 비밀을 담았습니다. (웃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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