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lbegae Book Letter
행간과 여백 _No. 7 / 250205
∥ Contents
- [인터뷰] 코펜하겐에서 찾은 '관계'와 '도시'
- [연재] 작가의 말들 #4 • 박혜수
- [북디자인] Refresh, '새로고침'으로 오래 기억되는 책이 되었으면
- [리뷰] 신영복 선생 9주기, 다시 처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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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제목이 ‘관계도시’일까요. 띄어쓰기를 하지 않은 이유도 분명히 있을 듯한데요. 『관계도시』는 건축, 도시, 디자인, 사회, 사람 이야기라면 귀가 쫑긋 세워지는 독자들에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합니다. 코펜하겐을 기반으로 유럽과 한국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박희찬. 20년간 서울과 코펜하겐을 오가며 두 도시의 차이를 선명하게 체감한 박희찬 저자를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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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책이었어요. 건축가가 바라본 코펜하겐이라는 도시가 궁금해 읽기 시작했는데, 사회학자가 쓴 책이 아닐까 싶기도 했습니다. 특별히 좋았던 지점은 ‘어떤 도시의 문화가 더 훌륭하다’라는 가치 평가가 없다는 점인데요. 어떤 방향성을 갖고 집필하셨나요?
『관계도시』는 한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관계 맺는 방식이 그들의 도시, 건축, 디자인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그리고 반대로 도시, 건축, 디자인이 다시금 그들의 관계 맺는 방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를 이야기한 책이에요. ‘관계 맺는 방식’은 추상적이고 모호해 좀처럼 구체적으로 그려지지 않죠. 또 방식이 너무 다양하고 개인적이기 때문에 자칫 제한된 경험을 단순화해 서술하면 너무 주관적인 해석이 되어버릴 수 있고요. 그래서 주관적 가치평가는 의도적으로 피하려고 했습니다. 책에서 소개한 사례들을 통해 관계 맺는 방식을 드러내고자 했을 뿐이죠. 『관계도시』는 코펜하겐 사람들이 맺고 있는 조금은 특별한 관계가 그들의 도시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코펜하겐의 도시, 건축, 디자인이 훌륭한가 그렇지 않은가에 관한 이야기는 아니죠.
초고의 제목도 ‘관계도시’였나요? ‘관계’와 ‘도시’를 붙여 쓴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관계도시’를 조금 더 고유명사화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글을 다듬는 동안 책 속의 소재와 이야기는 계속 바뀌었지만, 제목은 처음부터 끝까지 ‘관계도시’였습니다. 『관계도시』에는 저 나름대로 덴마크 사회와 환경을 바라보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이 책의 구조체 역할을 하는 스케일(척도)이란 개념을 만들어놓고, 그것에 맞는 코펜하겐에 대한 다양한 크기의 이야기들을 담고자 했죠. 제목이 바뀌면 책의 구조 역시 다 바꿔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제목을 바꾸는 일은 상상도 하지 않았어요. 다만 부제에 대한 고민은 있었죠. ‘덴마크적 일상의 배경’과 ‘조금은 덜 익명적인 도시’ 사이에서 고민했는데요. 편집자님과 논의한 후 ‘조금 덜 익명적이고 때때로 연결되는’으로 결정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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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펜하겐이라는 도시를 오랫동안 경험하면서, 건축가로서 또는 생활인으로서 가장 매력을 느낀 부분은 무엇인가요?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자전거’를 꼽고 싶습니다. 코펜하겐은 전 세계에서 자전거를 가장 많이 이용하는 도시 중 한 곳인데요. 평평한 지형을 가지고 있어 어디서든 자전거를 타기에 최적이죠. 물론 자전거 이용의 보급을 위해 코펜하겐은 자전거가 우선시되는 도로 계획과 관련 제반시설을 구비하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왔습니다. 제가 자전거를 가장 매력적인 요소로 꼽는 건 자전거의 효율성이나 편리성 때문만은 아니에요. 자전거 이용이 도시 전체에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 파급력 때문입니다. 자전거 중심의 도시는 자동차 중심의 도시보다 훨씬 더 안전하고 다양하고 친근하게 도시 환경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도시인들은 더 건강해지고, 도시 내부의 탄소배출량은 줄어듭니다. 자전거를 타면서 경험하는 도시의 모습은 훨씬 더 긍정적이죠. 자전거를 타면서 경험하는 도시는 자동차 안에서 경험하는 도시보다 훨씬 상쾌하고 활동적으로 느껴집니다. 즉 도시를 더 긍정적이고 능동적으로 경험하게 되죠. 자전거는 도무지 단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매력덩어리입니다.
‘덴마크’라는 나라를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행복지수죠. (2024년 유엔이 발표한 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덴마크의 행복지수는 2위) 오랫동안 덴마크에서 생활하면서 느끼신 부분이 궁금합니다. 그들은 왜 행복지수가 높을까요?
덴마크는 복지국가, 청렴한 나라, 국회의원들도 자전거로 출근하는 나라 등의 대부분 긍정적인 모습으로 포장되어 국내 미디어에 종종 등장하곤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라는 수식어도 항상 빠지지 않죠. 하지만 관계 맺는 방식이 서로 다른 것처럼, 행복을 느끼는 방식 또한 서로 다를 것이기에 행복의 순위를 정량적으로 매기는 방식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관계도시』에는 행복이란 단어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한국인으로서 한국과 덴마크를 비교할 때 두 나라 간의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차이는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나와 나의 가족에게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내 뒤에 있는 사회 시스템이 어느 정도는 해결해줄 것이라는 신뢰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주고 사회 내부의 소모적인 분쟁을 줄여줄 수 있습니다. 이 지면에서 전부 설명하긴 힘들지만, 덴마크가 세계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조세 저항이 굉장히 약한 이유는 사람들이 사회 시스템을 신뢰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축을 그리 많이 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고요. 사회 전반에 깔려 있는 ‘신뢰’는 책에서 간접적 사례를 통해 계속 등장합니다. 참고로 ‘신뢰’ 라는 단어 역시 이 책에서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코펜하겐에서 특별히 좋아하는 공간이 있다면요.
덴마크에서 저는 우리집을 가장 좋아합니다. 코펜하겐 교외에 위치한 우리집은 1960년대에 지어진 정원이 딸린 아담한 개인 주택입니다. 이곳은 코펜하겐 확장을 위한 마스터플랜인 핑거플랜(finger plan)의 손가락 부분에 해당하는 지역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여름이면 잔디를 주기적으로 깎아주고, 잡초도 손수 뽑아야 합니다. 오래된 주택이라 매년 소소한 수선이 필요해 손이 많이 가지만, 그만큼 더 애착이 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여행자들이 가보면 좋을 공간을 추천해주신다면요.
공간적으로 특별한 장소를 소개하자면,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을 원픽으로 추천하고 싶습니다.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북쪽으로 약 50분 기차를 타면 도착하는 훔레벡(Humlebæk)의 주택가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습니다. 루이지애나 현대미술관은 한 번에 지어진 단일 건물이 아니라, 여러 차례에 걸쳐 확장된 건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환상형의 관람 동선을 이루는 건축의 군집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미술관은 해안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데요, 대지의 자연스러운 흐름에 따라 건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보니, 박물관 내부를 천천히 걷다 보면 차츰 내부와 외부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완전히 다른 공간과 전시물들을 체험할 수 있게 됩니다. 이 다양한 공간을 다루고 연결하는 방식을 유심히 살펴보면, 내부 공간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덴마크 특유의 방식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독자들이 이 책을 더 흥미롭게 읽을까요? 책을 쓰면서 상상했던 독자가 있나요?
대도시의 익명성은 자유를 보장하는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집단화되었을 때 나타나는 부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서울은 익명성이 극도로 고도화된 대도시이며, 우리는 인터넷과 개인화된 미디어로 인해 갈등과 반목이 심화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조금 덜 익명적인 사회가 구축한 도시의 모습을 들여다보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의미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관계도시』를 통해 덴마크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지니고 있는, 조금은 독특한 관계 맺는 방식이 그들의 일상과 사회구조에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들여다보고자 했습니다. 건축가로서 저는 디자인, 건축, 그리고 도시를 이러한 관계를 가시화하는 도구로 활용한 거죠. 이 책은 건축가의 시각으로 바라본 도시 ‘코펜하겐’을 다루고 있지만, 책에 대한 관심이 건축에 국한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 덴마크나 코펜하겐에 관심 있는 분들뿐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협동조합이나 공동체 문화, 또는 도시 정책에 관심 있는 분들께도 흥미로운 읽을거리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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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궁금해서 던지는 질문은
기분을 나쁘게 하지도, 사악하지도 않다”
간혹 사람들에게 듣는 말이 있다. “지금 저 인터뷰하세요?” 누군가가 자신을 향해 이렇게 많은 질문을 쏟아낸 적이 없었다며, 당황스럽기도 반갑기도 한 표정으로 하는 말. 나는 초면인 사람들에게 서슴없이 질문을 던지곤 한다. 질문을 즐기는 사람은 나의 시시콜콜한 물음이 즐겁겠지만, 고요한 사색을 선호하는 사람에겐 괜한 오지랖일지 모른다.
가벼운 질문, 무거운 질문은 발신자가 누구냐, 수신자가 누구냐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질문은 서먹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탄생하고, 또 다른 질문들은 순수한 궁금증으로부터 튀어나온다.
공적인 공간에서는 어떤가. 강의가 끝나면 청중들은 강사의 눈을 피한다. 질문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늘 제가 강의를 잘해서 질문이 없는 걸까요?” 농을 던지는 강사는 어떤 질문도 좋으니 편하게 물어볼 것을 제안하지만 머뭇거리는 현장이 더 많이 목격된다.
“어떤 질문이 좋은 질문인가요?” 북토크 행사에서 독자에게 들었던 질문이다. “상대에게 정말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라면 뭐든 좋습니다. 지식이 많든 적든 상관없어요. 핵심은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질문인가죠.” 가끔 인터뷰 대상자가 되어 질문을 받을 때,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은 어려운 질문을 받을 때가 아니었다. 저 질문은 그냥 묻는 거구나, 진짜 궁금한 게 아니라는 확신이 든 찰나가 괴로웠다.
며칠 전 글쓰기 수업에서 합평을 하던 중, 한 수강생이 물었다. “그런 용기는 어떻게 나오나요?” “이상적인 생각을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고 쓴 수강생 P의 글을 함께 읽다 튀어나온 질문이었다. 순간 3초 정적.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예요”라는 부연설명이 없었더라도, 나는 이 질문이 좋았다. 쉽게 할 수 없는 질문, 글을 얕게 읽었다면 나올 수 없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궁금해서 던지는 질문은 기분을 나쁘게 하지도, 사악하지도 않다."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에 나오는 이 문장은 나를 오랫동안 안심시켰던 말이다. 좋은 질문을 정의해야 하는 순간, 편견 없이 질문을 마주해야 할 때 이 말을 오래 곱씹었다. 그리고 요즘 드문드문 생각한다. 우리는 왜 진짜 질문을 하지 않을까,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을사년 1월, 나는 새해 계획을 세운다. 나에게든 누군가에게 진짜 질문을 해보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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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De:sign _《새로고침 서양미술사》
Refresh, '새로고침'으로 오래 기억되는 책이 되었으면
_김민해(@kimmminhae)
미술책의 표지는 더 생각하면서 보게 됩니다. 수많은 그림 중 왜 이 작품을 표지에 넣었을까, 왜 이 컬러를 선택했을까 유심하게 살펴보다 보면 북디자이너의 마음이 읽히기도 합니다. 『새로고침 서양미술사』의 표지는 하나의 작은 건축물 같았습니다. 그림을 중심으로 제목, 저자명, 부제가 하나의 선으로 연결된 느낌이었죠. 독자가 무엇을 먼저 읽어낼 것인지, 시선을 예측하는 일도 북디자이너의 몫입니다. 책을 보자마자 ‘이건 무조건 소장각’이라고 확신한 『새로고침 서양미술사』의 표지를 만든 김민해 디자이너에게 물었습니다.
굉장히 큰 프로젝트였죠. 미술책, 그리고 개정판, 총 3권. 미션이 많았던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새로고침 서양미술사』는 제가 입사하기 전, ‘더 갤러리 101’ 시리즈로 이미 두 권이 나와있던 책이었어요. 솔직히 두 권의 표지가 이미 아름다워서 이대로 3권까지 나왔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표지를 바꾸게 된 건 아무래도 마케팅적인 부분 때문인데요. '서양미술사’를 다룬 책이라는 사실이 직관적으로 느껴지지 않아서 포지셔닝이 다소 어려웠어요. 이 부분에 대해 이진숙 작가님도 뜻을 같이 했고, 무엇보다 이 분야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더 직접적으로 어필하고자 ‘서양미술사’라는 주제를 부각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맞췄어요. 기획의 방향이 바뀌면서 3권 출간과 함께 개정판을 내게 됐고요. “이진숙 작가의 관점으로 새롭게 쓴 서양미술사”라는 의미와 “미술사를 새롭게 고쳐 나간 예술가들을 소개한다”는 중의적인 의미를 담아 『새로고침 서양미술사』라는 이름이 탄생했습니다.
현대미술을 다룬 3권은 작품의 저작권 이슈가 컸을 듯해요.
맞아요. 작품 저작권 문제가 편집부의 화두였어요. 현대미술의 저작권이 거의 유효하고, 도판이 여러 개 들어가다 보니 저작권료 지불로 많은 비용이 들어간 책이에요. 비용적인 이유로도 미술사적으로 의미 있는 현대미술을 한 데 모으는 것이 쉽지 않은데, 책의 완성도를 위해 편집부에서 결정을 내렸어요. 종이나 후가공에도 제한을 두지 않았고요. 책의 전체적인 완성도를 위한 여러 결정이 『새로고침 서양미술사』의 소장가치를 더욱 높여줬다고 생각해요. 디자인 방향은 ‘서양미술사’라는 주제를 잘 나타낼 수 있고, 언제 봐도 질리지 않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내기 위해 미니멀하고 클래식한 디자인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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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이미지는 어떻게 정해졌나요?
디자인을 시작하기 전에 이진숙 작가님께서 1, 2, 3권 그림의 조합을 몇 가지 보내주셨어요. 다양한 조합이 있었는데 지금의 표지가 서양미술사의 흐름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어요. 학문적으로는 서양미술사를 시대별 사조로 변화를 구분하지만, 그림을 종교적인 목적으로 그렸던 때를 거치고, 과시를 목적으로 특정 계층을 위해 그렸던 때를 거쳐(1권), 인간에 대한 다양한 시선이 그림에 반영되고, 형태의 표현이 단순하게 혹은 복잡하게 추상화되고(2권), 예술이 개념화되고, 대중에게 더욱 친근하게 표현되기도 하는(3권) 등의 흐름 속에서 변화의 지점을 잘 보여주는 작품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컬러를 선택한 과정도 궁금해요.
각각 표지 그림들과 잘 어우러지는 동시에 3권 세트인 만큼 전체적으로도 조화로운 색을 고민했어요. 색을 통해 다채롭고 새로운 느낌도 주고 싶어서 선택한 컬러예요. 보라색, 갈색, 형광연두색으로 정하고도 보라색은 청색이 더 올라간 보라가 좋을지, 갈색은 적색이 많은 갈색이 좋을지, 형광 연두는 많이 튀지는 않을지 계속 생각했어요. 보통은 제작사양서를 넘기면 후련하게 손을 떼는데, 이번 책들은 색상이 중요한 디자인 포인트 중 하나이다 보니 색에 대한 세부적인 고민을 어느 때보다 많이 했던 책이에요. 그렇게 고민을 했는데도 2권 갈색이 코팅을 하니 검은색에 가깝게 색이 올라와서 결국 다시 찍었어요. 어쩌다 보니 끝까지 애를 태웠던 책이라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처음 책을 마주할 때 제목보다 그림을 먼저 보게 되더라고요. 1,2권의 경우 일부러 배경색을 진하게 하고 제목 텍스트의 컬러도 눈에 띄지 않게 작업하셨나 생각했어요.
표지 그림의 밀도가 매우 높고, 컬러로 된 완성도 높은 작품이기 때문에 더 작게 들어간다고 해도 눈에 띄더라고요. 이 표지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색상, 그림, 글자 이렇게 세 가지잖아요. 색상과 그림이 눈에 확 들어오는데 글자마저 눈에 들어오려고 하면 밸런스가 안 맞을 것 같았어요. 컬러와 그림의 조화로 느껴지는 전체 분위기, 그 다음에는 그림, 그리고 텍스트 순서로 큰 것에서 점점 작은 디테일까지 시선이 옮겨가면 좋을 것 같아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했죠. 1권과 3권은 배경과 같은 색상 계열로 색을 썼고, 2권은 흰색보다 한 톤 다운된 무광 은색을 써서 제목이 강하게 드러나지 않더라도 배경과 어우러져 부드럽고 조화롭게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디자이너님은 세 권의 책 중 어떤 표지가 가장 마음에 드나요?
사실 저는 케이스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케이스에서 세 권의 색 조합을 아우르는 베이지 톤의 색을 원했는데, 너무 노란끼가 있어도 안되고, 너무 진하거나 옅어도 이상하고 등의 제가 세운 기준에 부합하는 색상의 종이를 찾기 힘들었어요. ‘마테리카’라는 종이에서 제가 원하는 색과 가까운 베이지색을 찾았을 때 기뻤고, 그 위에 유광 마젠타-보라색 박이 생각했던 대로 나와서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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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 9주기, 다시 처음처럼
_엄지혜(@koejejej)
어른의 한 마디, 선생의 한 문장이 사무치게 그리운 요즘. 엄혹하다는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닌 겨울을 보내며, 고 신영복 선생을 떠올렸다. 지금 선생이 살아계셨다면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넸을까. 들을 수 없지만 읽을 수 있는 선생의 목소리. 2025년을 여는 첫 달, 노란빛 표지를 입은 책 『처음처럼』을 다시 꺼내 읽었다.
선생의 책은 언제나 잘 읽힌다. 누구라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책, 소화할 수 있는 문장. 독자를 배려하는 글들을 곱씹다 보면, 작가의 문체에도 심성이 깃든다는 말은 조금도 과장이 아니다. 『처음처럼』을 펴내기까지 신영복 선생은 꽤 망설였다. 발표된 글에서 일부 문장을 따로 떼어 싣는 일, 조연이었던 그림이 주인공의 위치에 놓이는 일. 저자로서는 주저했지만 기획자와 편집자의 고마운 설득으로 우리는 이 책을 만났다.
서문에서 신영복 선생은 “나로서는 매우 미안한 책.(10쪽)”이라고 밝히지만 나는 고마웠다. 신영복 선생의 글을 처음 만나는 독자들에게는 ‘입문서’로 이만한 책이 없다고 여겼으니까. ‘처음처럼’에서 시작해 ‘석과불식’(碩果不食)으로 끝나는 이 책은 인간은 왜 성찰해야 하는 존재인지, 실천과 인식은 왜 함께 가야 하는지, 물을 모으려면 왜 자신을 낮은 곳에 두어야 하는지를 부단히 설파한다.
“머리 좋은 것이 마음 좋은 것만 못하고, 마음 좋은 것이 손 좋은 것만 못하고, 손 좋은 것이 발 좋은 것만 못합니다.(233쪽)”라는 선생의 말은 2025년 대한민국의 풍경을 말해주는 듯하다.
희망이 있을까, 세상은 과연 변하고 있는가. 의심의 단초들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헤집어놓을 때, 『처음처럼』에 담긴 신영복 선생의 글과 그림을 떠올린다. 무엇을 잊고 무엇을 간직해야 하는지, “시대를 정직하게 호흡하고, 시대의 아픔과 함께 하는 삶”을 살며, ‘삶’이라는 글자 속에 ‘사람’을 읽어낸 선생의 9주기를 추모하며 「새해」라는 제목의 글을 옮겨 적는다.
“세모(歲暮)에 지난 한 해 동안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것은 삶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잊지 않고 간직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나는 이 겨울의 한복판에서 무엇을 자르고, 무엇을 잊으며, 무엇을 간직해야 할지 생각해 봅니다.(6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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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북:레터 〈행간과 여백〉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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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엄지혜
에디터 고운성
마케팅 김영수
-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77-20(문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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