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lbegae Book Letter
행간과 여백 _No. 8 / 250307
∥ Contents
- [인터뷰] 우리 산에 사는 꽃들을 찾아보고 이름을 부른다는 것 / 《한국의 산꽃》, 김진석
- [연재_엄지혜 에세이] 작가의 말들 #5 • 자식은 부모의 증상이다 _이승욱
- [바이북바이로컬] 진주에서 만난 보석 같은 서점, 보틀북스
- [리뷰] On Writing Well : 좋은 글쓰기를 위한 태도와 실용적인 조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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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산에 사는 꽃들을 찾아보고 이름을 부른다는 것
“표지를 보자마자 펀딩했습니다. 이런 류의 책이 언제 또 다시 나올까 생각해 보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독보적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책.”,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했을지 생각해보면 고마운 책입니다.” 『한국의 산꽃』 알라딘 구매자 리뷰에 올라온 글입니다. 보통의 책이라면 책날개에 실릴만한 찬사가 가득합니다.
한 권의 식물도감을 펴내기 위해 김진석, 이강협, 김상희 작가님은 6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도감에 수록할 생각조차 못했던 식물들을 만나는 순간, 김진석 작가님은 ‘이건 누군가에 의해 짜인 각본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독보적인 들꽃도감 『한국의 들꽃』 이후 6년 만에 『한국의 산꽃』을 펴낸 김진석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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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꽃』을 기다렸던 독자들의 반응이 무척 각별합니다. 『한국의 들꽃』 이후 어떻게 지내셨나요?
울릉도, 가거도, 백령도와 같이 배를 타고 3~4시간씩 가야 하는 섬들이나 덕유산, 지리산, 설악산 등 높은 산들을 많이 다녔어요. 사진 자료가 충분하지 못한 식물들이 너무 많아서 6년 동안 그 식물들을 찾아 다니는 일에 집중했죠. 『한국의 산꽃』을 위해 가장 많이 찾아간 곳은 한라산입니다. 최근 3~4년 동안 서른 번 이상 한라산에 올랐던 것 같습니다. 또 북한에 분포해 국내에서는 볼 수 없는 식물들을 백두산이나 두만강 인근 지역에서 관찰하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2020년에 백두산 조사를 가지 못했고, 그 후 다양한 원인으로 중국 입국이 어려워져 백두산 식물을 촬영할 기회가 없었는데, 다행히 2024년에 백두대간식물탐사대 이도근 대장님이 백두산 탐사에 두 번이나 초대해주셔서 많은 수의 북방계식물들을 소개할 수 있게 됐어요.
식물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는 도감을 펴내는 일 아닐까 싶어요. 나무, 들꽃에 이어 산꽃까지 펴낸 소감이 궁금합니다.
지금 생각해도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최고의 도감을 만들겠다고 목표를 세운 것은 대학교 2학년이었던 1998년이었습니다. 『한국의 나무』, 『한국의 들꽃』에 이어 『한국의 산꽃』을 출간하면서 그때 세웠던 목표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고 조심스럽게 자평합니다. 『한국의 산꽃』은 기대했던 것보다 완성도가 높은, 저자들의 노력과 능력을 넘어선 결과물이라고 요즘 자주 생각합니다. 운명이라는 단어를 믿지 않는 성격이지만,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정말 많은 분이 운명적으로 제 앞에 나타나셔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국내 분포를 최초로 확인한 30종의 미기록식물 수록하셨습니다. 현장에서 미기록식물을 발견할 때, 어떤 기분이신가요?
최근 한라산을 서른 번 이상 올랐습니다. 이런 노력에 대한 보답인 것처럼 ‘한라쥐꼬리새’를 만나게 됐죠. 태풍이 지나간 후 비바람을 맞으며 설악산을 등반하다 ‘설악분취’를 만나기도 했는데 모두 운명적으로 『한국의 산꽃』에 수록하게 됐습니다. 설악분취는 러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만 자라는 전 세계적 희귀식물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식물상(flora)을 보다 정밀하게 만드는 일에 약간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것에 연구자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기후 변화로 인해 꽃들의 변이, 수명도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식물연구자로서 기후문제를 최전방에서 실감하실 텐데요.
처음 식물 공부를 할 때 자주 갔던 대구의 팔공산(가산산성), 용지봉이나 강원도의 두문동재, 송지호의 풍경은 지금과 많이 차이가 납니다. 식생이 많이 변했죠. 불과 20여 년밖에 시간이 흐르지 않았지만, 북방계 식물이나 희귀식물들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개체 수가 줄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것 같아 매우 안타깝습니다.
아름다운 산꽃을 많이 볼 수 있는 국내의 산을 추천해주신다면요.
설악산과 한라산입니다. 두 곳은 멀리 떨어져 있는 만큼 볼 수 있는 산꽃의 종류도 많이 다릅니다. 설악산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다양한 북방계 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고 많은 희귀식물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한라산은 해발고도에 따라 분포하는 식물들이 뚜렷하게 변화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매우 특이한 곳입니다. 산 아래쪽에서는 상록성 식물이나 난초류들이 많이 자라고 중산간지역에서 온대성 식물이,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서는 국내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한라산 고유식물들이 자랍니다.
나무 중에서는 들메나무를 좋아하신다다고요. 『한국의 산꽃』에 등장하는 꽃 중 가장 좋아하는 꽃은 무엇인가요?
맥문동, 개맥문동, 소엽맥문동 등 맥문동 종류를 좋아합니다. 그중에서도 어떤 곳이든 어떤 시기든 항상 푸르름을 유지하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개맥문동을 특히 좋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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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을 연구한 후로 두 개의 꿈이 생겼다고 하셨죠. 도감을 만드는 일과 식물원을 짓는 일. 세 권의 식물도감을 쓰셨으니 이제 식물원을 꿈꾸고 계실까요?
식물원을 만드는 건 식물도감과는 다른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의욕이 있다고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쨌든 기회가 된다면 제가 좋아하는 자생식물들로 이루어진 작은 공간을 만들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산꽃』을 잘 감상할 수 있는 팁을 하나 알려주신다면요.
참고와 사진 설명에 해당 식물의 가장 중요한 형질에 대한 특징 설명과 함께 다른 식물들과의 구분법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을 잘 활용하시면 손쉽게 식물들의 이름을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식물 공부를 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첫걸음은 식물 이름과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처음 공부하는 분들은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편안한 마음으로 예쁜 사진들을 감상하시면서 식물의 이름을 한 번씩 불러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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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은 부모의
어떤 행위와 태도 때문에
평생의 고통을 적어도 하나씩
감당하며 살기 마련이다”
부부문제를 다루는 예능 프로그램을 가끔 본다. 어떻게 저런 사연이 있을까, 극단의 최고점에 있는 사례들을 목격할 때마다 놀랍고 안타깝다. 어떤 일이든 쉬이 판단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문제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많은 경우 평온하지 못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로부터 온전한 사랑을 받지 못해 빨리 가정을 이뤄 독립하고 싶었다는 출연자, 부모가 됐지만 여전히 자신의 부모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경우도 무척 흔하다.
“너도 부모가 되면 엄마 마음 이해할 거야”라는 말을 지겹게 듣고 자랐지만, 나는 부모가 된 후로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더 많아졌다. 착한 자식으로 인정받기 위해 애를 썼지만, 내 옆에는 언제나 잘나가는 ‘엄친아’가 있었고 칭찬과 핀잔을 동시에 마주하다 보면 어떤 말도 진짜처럼 들리지 않았다. 육아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심리서를 보면 볼수록 이해하기 어려웠다. 지금도 이해는 힘들지만 받아들인다. 나와 다른 환경 속에서 자란 한 명의 개인으로, 이제는 쉽사리 달라지기 어려운 세대에 접어든 한 사람으로.
“알프레트 아들러가 말했다. 격려하기의 절반은 좌절을 방지하는 데 있다고. 좋은 부모 되기의 절반은 신경질, 짜증, 화를 내지 않음으로써 가능하다. 모든 신경증은 대물림된다. 자식은 부모의 증상이다. (87쪽)”
내 아이가 마흔쯤되면 부모를 어떻게 평가할까. 나의 어떤 행위와 태도 때문에 평생의 고통을 감당하고 있다면 그것은 뭘까. 내 인생 신조 중 하나는 “좋은 음식 찾아 먹을 생각하기 전에 나쁜 음식을 덜 먹자”인데,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무턱대고 화내는 일만큼은 안 하려고 애쓰는데, 정작 아이는 내게 다른 것을 바라고 있지는 않을까.
『마음의 문법』은 쉽게 읽히지만 송곳 같은 구석이 많은 책이다. 2022년에 처음 읽고는 일년에 한 번쯤 다시 꺼내 본다. 3년 전에는 이 문장에 밑줄을 쳤군, 2년 전에는 이 대목에서 울컥했네, 올해 내 눈길을 사로잡는 대목도 역시 부모 자식 문제군, 하고 생각한다.
내 마음의 상태를 알아채는 일, 오늘도 한 권의 책으로부터 시작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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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y Book, Buy Local
책을 매개로 다양한 담론을 담아내고 싶습니다
_채도운 보틀북스 대표(@bottlebooks_archive)
2018년 겨울, 경남 진주 문산읍에도 자그마한 동네서점이 생겼다. ‘보틀북스’. 처음엔 유명한 커피 브랜드, 블루보틀이 진주에 입점한 줄 알고 찾아온 이도 있었다. 보틀북스는 이름 그대로 병(bottle)과 책(books)이 있는 공간으로, 다양한 병음료와 책을 즐길 수 있는 동네사랑방이다. 8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보틀북스는 싹을 틔웠다.
진주 문산읍은 특별한 동네다. 인구는 7,600명 남짓으로, 60대 어르신이 막내라고 불릴 정도로 고령화된 곳이기도 하다. 서점 주변에는 단감, 매실, 딸기 농가들이 들어서 있고, 가로수길 나무 사이사이마다 어르신들이 심어놓은 대파나 상추가 빈틈없이 땅이 빼곡히 채우고 있다. 동네가 특별한 만큼 보틀북스에서도 빛나는 일들이 많이 펼쳐진다. 어르신들이 키우신 농작물과 책을 바꾸는 물물교환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매화꽃을 배경으로 이웃들과 아나바다 북마켓이 열리기도 한다. 6년이라는 시간 동안 책에 대한 애정, 문화에 대한 갈증을 느낀 이들이 자연스레 서점에 모여들었다. 인문, 사회, 철학, 과학 등 다양한 분야의 독서모임이 매달 20~25여 개 활발하게 열리기도 했는데, 특히 신영복 선생님의 전집 읽기 모임은 아직도 애정을 갖고 있는 모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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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예기치 못한 임대료 인상 소식으로 보틀북스는 진주혁신도시로 이전하게 되었지만, 새로운 공간에서도 보틀북스는 특별한 이야기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얼마 전에는 『다민족 사회 대한민국』의 저자인 손인서 선생님을 모시고 북토크쇼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초등학생부터 중, 고등학생을 비롯해 교사, 직접 농가를 운영하는 이들도 함께했다.
책은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건넸다. 정부가 외치는 ‘다문화 사회’에서 우리는 얼마만큼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인가 의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인종주의자가 아니다’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사회가 만들어놓은 차별 속에 우리는 인종주의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학습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을 문제라 여기며, 노점을 사들이는 외국인에게 거부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우리 사회의 가장 어렵고 고된 부분에 그들이 노동력을 제공해야 한다는 은밀한 담합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사실 우리는 이미 깨닫는 중이다. 더 이상 단일민족이라는 민족주의적 사고방식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고, ‘우리’라는 테두리를 넓혀야 함을 절박하게 인식하고 있다.
책은 좋은 매개체다. 서로의 일상을 나누고,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고민하게 해주며, 대화를 통해 다른 시선을 이해하게 한다. 이제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다. 단순히 문화를 향유하는 공간 또한 아니다. 사람들이 모여 질문을 던지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함께 더 나은 방향을 모색하는 살아있는 담론의 장이 되어가고 있다. 변화의 시작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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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Writing Well : 좋은 글쓰기를 위한 태도와 실용적인 조언
_엄지혜(@koejejej)
공부를 잘 가르치는 강사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다. “문제집 열 권을 풀 생각을 하지 말고, 참고서 한 권을 정독하고 괜찮은 문제집 한 두 권을 집중적으로 풀어라.” 『글쓰기 생각쓰기』를 나는 왜 이제야 읽었을까? 이 책을 진작에 읽었다면 좋은 글쓰기 책을 찾느라 괜한 시간을 소비하지 않았을 텐데. 글쓰기 수강생들에게 숱하게 글쓰기 책을 추천하면서도 뭔가 아쉬운 구석이 있었는데 이제야 완결판을 찾은 느낌이다.
좋은 글쓰기 책이란 뭘까. 책이 마땅히 갖고 있어야 할 요소를 온전히 충족해야 한다. 새로울 것, 유익할 것, 재밌을 것. 글쓰기 방법론을 말하는 책이라고 해서 따분할 필요가 전혀 없다. 작가, 편집자, 교수로 오랫동안 글쓰기를 가르쳐온 윌리엄 진서는 정확하고 유머러스한 동시에 거리낌이 없다. “글쓰기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는 행위”이기 때문에 『글쓰기 생각쓰기』도 그에 걸맞게 썼다. 글쓰기를 연마할 생각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독자들은 은근히 놀랄지 모른다. ‘어, 글쓰기 책이 왜 재밌지?’
1976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은 조금도 낡은 느낌이 없다. 2000년대 초반에 다시 쓴 서문에서 저자는 말한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내 관심사도 바뀌어왔다. 딱히 손에 잡히지는 않지만 좋은 글이 나올 수 있게 해주는 것들, 예를 들어 자신감, 즐거움, 의도, 정직함 등. (18쪽)” 나는 이 문장에서 글쓴이를 신뢰하게 됐다. 논픽션에서도 글의 분위기, 정서는 더없이 중요하니까.
“좋은 귀를 가진 글쓴이는 참신한 이미지를 찾으려 애쓰며, 케케묵은 문구는 피하려 한다. 진부한 사람은 소위 유효성이 입증된 일반적인 표현이야말로 자기 생각을 살찌운다고 여기고 낡은 문구를 구사한다. 또 하나의 해답은 간소함에 있다. 오래가는 글은 대개 짧고 힘 있는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다. (273쪽)”
윌리엄 진서는 “간소한 글이 좋은 글”이기 때문에 “버릴 수 있는 만큼 버릴 것”을 주문한다. 그가 신조로 삼고 있는 글쓰기 원칙 네 가지는 명료함, 간소함, 간결함, 인간미. “거의 자기 학대에 가까운 절제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저자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독자들은 금방 알아차리기 마련이니, 나만의 진실한 목소리를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최고의 이야기는 대개 소재보다는 의미에 달려 있다”는 말로부터 논픽션 글쓰기는 시작되어야 한다.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쓰는 것, 나답게 완성하는 일, 독자를 배려하는 글쓰기를 시작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글쓰기 생각쓰기』에 담긴 실용적인 조언과 통찰을 귀히 여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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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북:레터 〈행간과 여백〉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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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엄지혜
에디터 고운성
마케팅 김영수
-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77-20(문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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