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lbegae Book Letter
행간과 여백 _No. 10 / 250521
∥ Contents
- [사람들] 신입사원, 인사드립니다 / 정지연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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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1_엄지혜] 누구에게나 검지의 시절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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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작가의 말들 #7 • 세상이 바뀌는 방향으로 동참하면서 _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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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북바이로컬]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 책방짙은
- [리뷰 #2_김현성] 차별이 몸을 갉아먹는 사회, ‘웨더링’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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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신입 마케터 인사드립니다
“시대의 맥락을 읽는 감각으로부터”
‘돌베개’에 신입 마케터가 출근했습니다. ‘영업부’에서는 근 20년 만에 맞는 신입사원인데요. 이력서와 함께 ‘리마케팅 기획서’를 제출해 선배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책이라는 물성에 각별한 애정을 품고 출판계에 뛰어든 정지연 마케터를 만났습니다.
꽃피는 봄날, 입사를 축하드려요.
<돌베개 레터>를 구독하는 독자님들께 먼저 인사를 드릴 수 있어 정말 기뻐요. 오늘 파주로 첫 출근하면서 날씨가 많이 따뜻해졌다는 걸 느꼈어요. 많이 떨리고 아직은 익숙하지 않은 이곳에서, 독자분들께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지 곰곰이 생각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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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셨다고요. 어떤 계기로 출판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대학 생활을 하던 중 “사진을 잘 찍는 사람은 많지만, 자신의 작업을 자신의 언어로 잘 설명하는 작가는 없다”는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한국문학을 많이 읽기 시작했어요. 스무 살 때 한강 작가님의 소설을 처음 읽었는데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이렇게 깊게 파헤칠 수 있구나, 그런데 그 파헤침이 참으로 다정한 것이구나.’ 이 서늘한 다정함이 희망처럼 다가왔습니다. 그 후 특정 분야를 가리지 않고 ‘좋은 책’을 발견하면 읽기 시작했는데, 책에 대한 사랑이 ‘책’이라는 물성, 그 손에 잡히는 감각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졌어요. 저는 어떤 방식으로든 책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고 믿어요. 세상을 더 선하게 바꿀 수 있다고 믿고요. 이 생각의 결실이 출판인이 되고 싶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습니다.
돌베개 책은 어떻게 접하셨나요?
출판계 동향을 살피다 보면 늘 돌베개 책들이 눈에 띄었어요. 기획뿐만 아니라 만듦새도 훌륭하고 시대가 고민해야 할 질문을 꾸준히 책을 통해 던진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소수자의 이야기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돌베개 책들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마케터 채용 공고를 본 뒤 돌베개의 출간 도서, 판권 등을 꼼꼼히 살펴봤어요. 경력이 짧은 만큼 제 역량을 보여드리고 싶어 『묻지 않은 질문, 듣지 못한 대답』의 리마케팅 기획서를 만들었는데, 다행히 긍정적으로 봐주셨고요.
마케터는 트렌드를 잘 읽어야 하잖아요. 지연님만의 강점이 있다면요.
평소 책 외에도 다양한 콘텐츠를 자주 접하는 편이에요. 매거진이나 전시, 영상을 보는 게 일상이라서 출판계 외의 흐름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고 봅니다. 학부 시절부터 예술계 동향을 꼼꼼히 살피는 버릇이 있어서 지금 어떤 이야기가 주목받고 있는지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 같아요. 출판 수업을 통해 친해진 동료들과는 2년 가까이 문예지 읽기 모임을 이어가고 있어요. 문예지라는 이름이 붙어 있지만, 다양한 것을 함께 읽고 사유하는 모임에 더 가까워요. 마케터에게 중요한 건 시대의 맥락을 읽는 감각이잖아요. 이것들을 함께 고민하고 나눌 수 있는 사람들과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힘을 얻어요.
출판 마케팅을 가장 눈에 띄게 잘하는 곳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무래도 민음사의 유튜브 채널 <민음사TV>가 가장 먼저 떠올라요. 책 한 권을 알리는 마케팅이라기보다는 출판사 자체를 브랜딩하는 방향이 뚜렷한 채널이라고 생각해요. 단순히 도서를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책을 보여주는 방식이 요즘 독자들과 잘 맞는다고 느꼈어요.
돌베개 책 중에 가장 애정하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퀴어 청소년 단편집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예요. 청소년 퀴어 서사들로 채워진 이 소설집은 그저 사랑만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누구에게나 처음 찾아오는 감정, 사랑. 더 다양한 연령대의 퀴어 서사를 읽고 싶다고 생각하던 즈음에 만난 책이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여름에 읽으면 더 싱그럽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이니, 다가오는 푸릇한 여름에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해 드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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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은요.
주로출판사에서 만든 『지영』이라는 만화책을 최근에 읽고 하루 종일 지영만을 생각하느라 침잠하는 상태로 오래 머물렀어요. 성노동자의 삶을 살아가던 ‘지영’이라는 존재를 잊고 싶지 않았고요. “어떤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할 때는 시스템 전체를 이야기할 것. 그 어떤 삶도 비난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만든 책이라 의미가 컸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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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힙에 이어 라이팅힙이 대세라지요? 최근 필사책도 다시 인기를 얻고 있고요. 지연님은 책, 독서, 글쓰기의 가장 큰 효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독서와 글쓰기가 합쳐지는 순간, 세상을 사유하는 깊이가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나’를 주어로 쓴 글보다 ‘타인’을 주어로 쓰는 글이 훨씬 어렵다는 걸 오랫동안 느껴왔어요. 독서는 타인의 이야기를 면밀히 들여다봐야 하잖아요. 누군가의 삶과 고통을 읽어내면서, 때론 오해를 반복하더라도 끝까지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는 일이 독서 같아요. 그렇게 자연스럽게 독서와 글쓰기가 맞닿을 때, ‘나’에서 벗어나 ‘세계’로 다가가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믿어요. 개인이 세상과 가장 깊이 마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돌베개 유튜브 채널을 전담한다면, 꼭 만들고 싶은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다양한 콘텐츠와 책 사이의 연결 지점을 찾는 기획을 해보고 싶어요. 일본의 근미래를 다룬 <해피엔드>라는 영화를 최근에 봤는데, 자연스레 서경식 선생님의 『디아스포라 기행』이 떠오르더라고요. 돌베개의 책과 함께 보면 더 풍성하게 느껴지는 영화, 전시, 드라마 등을 소개하는 콘텐츠도 구상해 보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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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육자로 사는 또 다른 즐거움 중 하나는 독서의 폭이 넓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에 놓인다는 사실이다. 아기를 키울 때는 그림책을, 시집보다는 동시집, 소설보다는 아동문학, 이제는 청소년소설을 부러 챙겨 읽는다. 아이가 사춘기를 겪는 시기가 오면 꼭 실천해야지 다짐했던 것 중 하나는 ‘청소년소설 선물하기’다. 구글플레이 기프트카드를 더 좋아할 게 눈에 선하지만, 그래도 청소년소설을 가끔 사주는 부모이고 싶다.
『검지의 힘』을 읽고 나니 강한 충동에 사로잡힌다.
“아 이 소설은 꼭 읽히고 싶은데.”
슬쩍 아이 책상 위에 올려놓고 질문을 하나 던진다. “이 책 어떤 내용일 거 같아?” 열심히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던 아이는 귀찮은 듯 투덜거리며 답한다. “아 말 시키지 마.” 엄마가 서운해하는 듯하니 두 문장을 보탠다. “만화책 같은데? 됐어?”
소설 속 주인공 ‘연하지’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그런데 애매한 능력이 하루아침에 생겨버렸다. 바로 손가락 ‘검지’에 강한 힘이 생긴 것. “순간 이동도 아니고, 타임 리프도 아니고, 하다못해 손의 힘이 세지는 것도 아니고, 검지의 힘만 강해지는 능력. (18쪽)”이 검지는 반갑지가 않다. 급식을 먹다 숟가락이 휘어지질 않나, 검지로 친구의 이마를 가볍게 밀었을 뿐인데 친구들이 우당탕 넘어지질 않나, 하지는 검지의 힘이 반갑지가 않다. 아무래도 쓸모 없는 힘이 생긴 것 같은데, 다행히도 ‘검지의 힘’은 옵션이 하나 있었다. 이 힘을 받고 싶은 친구가 하지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줘”라고 말하면, 힘은 이동한다. 하지는 이 ‘검지의 힘’을 전달한 덕분에 친구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는다.
검지의 힘은 요상하다. 이 힘을 잘 다루는 친구에게는 퍽 쓸모가 있는 것도 같고 누군가에게는 벌칙처럼 주어진 능력인 것 같기도 하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힘이라면, 검지의 힘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할까?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내 손가락 ‘검지’를 괜히 흘긴다.
“왜 검지의 힘이 필요한 거야? 너도 알겠지만 세상 쓸데없어. 검지의 힘 정도로는 할 수 있는 게 없거든. (57쪽)”
“그건 네가 쓸 줄을 모르는 거고. 나는 이 능력, 야무지게 다 쓸 거야. (134쪽)”
하지와 친구들은 ‘검지의 힘’을 두고 제각기 다른 정의를 내놓는다. 신기한 건 이 검지의 힘을 탐색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이들 모두가 단단해졌다는 사실. 과연 이 ‘검지의 힘’이 상징하는 것은 무얼까, 독자들은 소설을 읽는 내내 톺아본다.
아마도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듯하다. 누구에게나 스스로를 조연으로 여겼던 검지의 시절이 있고, 그 검지의 시절은 사실 꽤 귀한 시간이었다고. 어떤 대상을 다시 일으키게 만드는 힘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존재하는 건 아니라고.
『검지의 힘』이 큰 사랑을 받으면 좋겠다. 후속작 ‘새끼의 힘’이 탄생하면 어떨까. ‘하지’도 또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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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y Book, Buy Local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_최수이 책방짙은: 대표 (@zitn_books)
무엇인가를 좋아하고 몰두하면 끝없이 깊이 빠지고 ‘짙어지는’ 사람, 바로 접니다. 책방은 서점지기의 정체성을 담는 곳이니까, ‘좋아할수록 짙어지는 공간’이라는 뜻으로 ‘책방짙은:’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2021년 봄에 문을 열었으니 벌써 5년 차가 됐네요. 책방을 연 계기의 중심에는 『그리스인 조르바』가 있어요. 9년간 운영했던 미술학원이 코로나로 어려워져서 문을 닫게 됐는데, 그때 다시 읽은 『그리스인 조르바』가 제게 용기를 줬거든요. 아시겠지만 소설 속 화자가 사업이 망하자 조르바와 춤을 추면서,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해보겠다고 말하잖아요. 오히려 자유를 느끼면서요.
당시 제가 딱 그랬어요. 학원이 어려워진 게 커다란 힘듦으로 느껴졌다기보다 홀가분했고, 나를 얽매던 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얻은 느낌이었어요. 이 바닥을 치고 올라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책방을 열었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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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개 이상의 모임을 운영 중인데 가장 대표적인 모임이 ‘창작그룹 짙은:’이에요. 허윤정 사진작가님의 수업을 통해 만들어진 창작자들의 그룹이죠. 3년째 공동 사진집과 개인 포토에세이를 만들고 매년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시와 고전, 그림책을 좋아하기 때문에 관련 모임도 많아요. 시집을 읽고 이야기 나누는 “詩時한 모임’과 청년 시모임 ‘시공간’, 황진희 번역가님의 그림책 테라피, 네 개의 고전낭독 모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도스토옙스키 전작 읽기, 카프카 읽기, 주말 고전낭독)이 진행 중이에요. 고백독서클럽은 2022년에 1년 동안 고전 100권 읽기를 목표로 한다는 뜻으로 개설된 온라인 매일 독서 인증 모임으로 현재는 한강 작가 전작 읽기를 하고 있어요.
어떻게 많은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하냐는 이야기를 종종 들어요. 아마도 책방의 정체성을 만들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단순히 책을 팔고 작가를 만나는 문화 행사를 여는 일을 넘어 책을 만드는 책방, 창작자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로의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최근에는 ‘창작그룹 짙은:’ 구성원들의 작업을 소개하는 <책방짙은: 매거진 - 창간호 Creative Route>를 출간했어요. 앞으로도 저희 서점이 창작자들의 산실이자, 그들에게 길을 안내할 수 있는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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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짙은:’의 스테디셀러는 한정원 작가의 에세이 『시와 산책』과 신형철 평론가의 『인생의 역사』를 꼽을 수 있어요. 동네책방용으로 디자인된 『인생의 역사』를 높이 쌓아놓고 팔았을 때, 정말 짜릿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또 제님 작가님의 에세이 『겨우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들』도 소개하고 싶어요. 책방이 막 생겼을 때 초보 책방지기에게 큐레이션 전시와 북토크를 제안해 주셔서 참 감사했어요. 그림책 베스트로는 원화 전시를 하면서 한달 동안 100권이 팔렸던 그림책 김선진 작가의 『나의 작은 집』이 있어요.
돌베개 책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돌베개에서 만든 책이라면 무조건 믿고 볼 수 있을 만큼 신뢰를 갖고 있어요. 표지 디자인, 종이, 서체 등도 항상 제 취향을 저격 중이에요. (웃음) 가장 좋아하는 책은 연암 박지원을 만나게 해준 『열하일기』예요. 한동안 연암의 매력에 푹 빠져서 헤어 나올 수 없었어요. 그럴 수 있었던 건 박수밀 선생님의 ‘열하일기완독클럽’ 덕분이에요. 책방을 열기 전 박수밀 선생님의 열하일기완독클럽 3기와 10기에 참여했고, ‘책방짙은:’에서도 박수밀 선생님을 모시고 열하일기완독클럽을 진행했어요. 읽을 때마다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경계인이자 근대인인 ‘연암 박지원’을 만나게 해준 돌베개에 늘 고마운 마음이에요.
책방은 저에게 늘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하고 외치는 것 같아요. 그저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인데 사람들이 모이고, 그들과 함께 무엇이든 펼치고 엮어 나가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 같아요. 동네책방은 ‘지역 문화의 모세혈관’이 아닐까, 아마 그 자부심으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책방짙은:’은 참새가 방앗간 지나치지 못하듯 들르게 된다고 해서 ‘짙은: 책방앗간’, 한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고 해서 ‘짙은: 늪’, 온갖 것을 배우고 익힌다고 해서 ‘짙은:학교’, 그리고, 말하면 이루어진다고 해서 ‘마법의 책방’(어떤 손님은 “짙은:에서는 함부로 말하면 안 돼. 말하면 진짜로 생겨. 무서워~”라고 하셨답니다)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올해는 정말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마법의 책방’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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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 노무현
"저를 중심으로
세상을 바꾸려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바뀌는 방향으로 동참하면서 저를 바꾸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항상 변화를 수용해 왔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저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_ 노무현, 『그리하여 노무현이라는 사람은』 176쪽
“책이 진짜 안 팔려요.” 작년 아니, 재작년에 이어 또 들리는 이야기. 내 주변 사람들은 정말 책을 좋아하고 지갑을 잘 여는데,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도 탔고 텍스트힙(Text-Hip)에 이어 라이팅힙(Writing-Hip)이 대세라는데 책이 잘 팔린다는 소식은 좀체 들려오질 않는다.
일 년에 네 권을 펴내는 게 목표인 1인 출판사 대표는 기획, 편집, 마케팅, 제작을 혼자 감당한다. 교정, 디자인 정도만 외주를 주고 있다. 마케터로 출판계에 들어온 대표에게 나는 권한다. “브이로그라도 하시죠. 콘텐츠 잘 만드시잖아요.” 대표는 곤란한 표정으로 대꾸한다. “제가 무슨.” “아니 왜요? 충분히 스타성 있으신데. 일단 뭔가를 꾸준히 올려야 ‘아 이런 책이 만들어지는구나’ 독자들이 생각하더라고요. 책 나올 때만 짠! 하고 보여주지 마시고 과정을 보여주세요. 사진 말고 영상으로.” 2년 전, 온라인서점에서 퇴사할 때도 모 출판사 마케터에게 “더 늦기 전에 유튜브 하시죠. 직원들 모두 출동시키시고”라고 권했는데, 어느덧 준셀럽이 되어 서울국제도서전에서 독자들로부터 사인 요청을 받는다는 후문이다.
이들은 애초부터 능력을 갖고 태어났을까? 떡잎부터 스타성이 보였을까? 그렇지 않다. 누군가 적극적으로 권했을 때, 일단 뛰어들었다. 갈팡질팡 망설이는데 에너지를 쏟지 않고 소화할 수 있는 대세라면 받아들였다. 결과는 차치해두고 경험을 선택했다. 해보고 아니면 그만둬도 괜찮다. 아무것도 안 해보고 시류를 탓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5월이라서 꺼내든 ‘노무현 전집’을 읽던 중에 평소라면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문장이 선명하게 박혔다. 평범한 문장, 보통의 이야기. 하지만 따지고 보면 가장 어려운 실천.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있어도 솔선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중략) 몰라서 안 되는 게 아니라 안 해서 안 되는 게 많은데. (370쪽)” 순간 정치와 출판이 겹쳐서 읽히는 건, 비약이 너무 심한가? 바꿀 수 없는 건 받아들이고, 동참할 수 있는 흐름이라면 일단 파도를 타보는 일. 이천이십오년 봄과 여름은 이렇게 살아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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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더링(Weathering)’이라는 단어는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웨더링의 개념은 우리나라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그리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니다. 공공보건 전문가인 제로니머스 교수는 자신의 저서 『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에서 웨더링에 대해 “생리학적 스트레스 반응이 여러 해에 걸쳐, 최종적으로는 수십 년에 걸쳐 반복적 내지 지속적으로 활성화되어 생기는 결과” 로 정의한다. 즉 오래 사용한 자동차 타이어가 마모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웨더링의 발생 원인에 대해, 지금까지 우리의 사고방식을 지배하던 주류적 관점과는 다소 다른 시각에서 규명하고 있다. 실제로 어떤 준거집단이 다른 준거집단보다 더 강한 웨더링 경향성을 드러낸다면, 그것은 그 집단의 고유한 특성이 아닌 외부로부터 받는 차별에 의해 조성된 환경에 의해 나타난다는 것이다. 즉 자동차도 안전한 아스팔트 도로만을 달린다면 더 오래 훌륭한 상태로 지속되겠지만, 험한 비포장 산길을 주로 달리게 된다면 금방 망가지게 되는 것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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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책 본문 전체에 걸쳐 사회적 차별이 만들어 내는 정신적, 생리적 스트레스와 그것이 특정 사회 공동체를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를 꼼꼼히 구명하고 있다. 특히 가장 눈여겨 볼 부분은 차별을 받는 집단의 경우 일상에서 마주하게 되는 사회경제적 위기와 스트레스가 구조적으로 주류 집단에 비해 차별받는 집단 구성원들의 건강을 눈에 보이지 않게 망가뜨리고 있는 점이다. 책 본문에서 주로 등장하는 집단은 미국의 흑인 커뮤니티이지만, 이는 우리나라로 확대할 경우 내국인 빈곤층 또는 이주노동자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될 수 있다. 심지어 특정 커뮤니티에서 발생하는 웨더링으로 인한 조기 사망은 결국 종국에는 유권자 구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지적은 다소 충격적이기까지 하다.
문제는 사회가 이러한 현상들을 ‘개인의 책임’ 으로 돌리고 그 관점에서 공공정책을 짤 때 더 커진다는 것이다. 빈곤층이나 저소득층이 겪는 다양한 문제를 단지 ‘그들이 입시에 열심히 종사하지 않아서’ 등으로 쉽게 정의하고 이들에게 필요로 하는 사회적 자원의 공급을 적대시하는 분위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이 때문에 한국의 공공정책 역시 ‘입시’ 라는 거대한 괴물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점을 지니고 있다.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정책 등이 대표적으로 그러하다. 이 정책은 얼핏 보기에는 공공보건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결국 안정된 일자리의 제공이 한국 사회에서는 차별의 문턱을 낮추고 웨더링 현상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저자가 지적하는 미국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저자는 빌 클린턴 행정부의 10대 부모 복지수당 삭감 등으로 대표되는 잘못된 공공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결국 공공정책은 한 공동체 내에서 가장 무시당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형평성을 제공할 것인지에 대해 역설한다. 저자의 부르짖음은 단지 흔들리는 강대국 미국에게만 해당되는 내용은 아니다. 오염된 지 이미 오래 된 ‘공정’ 이라는 개념을 앞세워,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에게 최소한의 협상의 기회조차 주지 않고 그들이 그저 마모되어 사라지도록 지워버리기 바쁜 우리 사회에도 ‘웨더링을 멈춰라’ 라는 저자의 울림은 매우 크게 다가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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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북:레터 〈행간과 여백〉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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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엄지혜
에디터 고운성, 정지연
마케팅 김영수
-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77-20(문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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