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lbegae Book Letter
행간과 여백 _No. 12 / 250724
∥ Contents
- [인터뷰] 삶과 앎의 거리 좁히기 _서재민, 『십 대를 위한 교실 밖 경제학』
- [르포타주] 읽고, 쓰고, 만드는 우리 삶을 위해 _〈사람사는세상 책문화제〉를 마치고
- [바이북바이로컬] 책으로 다시 피어나는 은평, ‘이호철 북콘서트홀’
- [리뷰] 미리 도착한 이야기 : 『두 번의 계엄령 사이에서』 _전승민 문학평론가
+ [북디자인] 흐르는 강물의 윤슬처럼 _김민해 디자이너
- [북펀드] 정병준, 『김규식과 그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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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_『십 대를 위한 교실 밖 경제학』
삶과 앎의 거리 좁히기
_ 서재민 선생님
“이 책은 여타 청소년경제 책들과 다르게, 깔끔한 그래프나 수치를 제시하지도 않고, 돈 잘 버는 방법도 알려주지도 않아요. 오히려 그래프, 수치, 돈의 신비로움 이면의/너머의 이야기를 합니다. 처음 접하는 이야기에 혼란스러울 수도 있지만, 여기서부터가 진짜 경제 이야기입니다. 경제는 먹고 사는 문제이고, 경제 공부는 어떻게 하면 나와 주변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하는 거죠. 책 속 7가지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의 경제 세상, 그 속의 나와 주변 사람들의 먹고 사는 문제들이 좀더 뚜렷하게 보이게 될 거예요.”
“사회에 관한 생각을 나누고 싶어서 전공까지 바꿔 사회 교사가 되셨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십 대를 위한 교실 밖 경제학』을 쓰기까지, 어떤 고민들을 하셨나요?
사회 교실은 우리 사회와 우리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이어야 하는데요. 안타깝게도 교실과 교실 밖, 교과서와 일상, 앎과 삶 사이의 거리가 아주 멀어요. 단적인 예로, 민주정치의 4대 원리를 암기했어도 학교에서 선생님, 친구들과의 맺는 관계가 민주적이지 않다면 ‘민주주의’에 대한 앎과 삶이 동떨어져 있는 거죠. 이 둘의 거리를 좁히는 수업이 제가 사회교사로서 정체성을 찾고 자존감을 지켜오는 방식이었던 거 같아요.
사회과는 정치학, 사회학, 법학, 경제학 등 모학문을 바탕으로 여러 영역(단원)이 있는데, 경제야말로 학생들이 살아가는 현실과 가장 거리가 먼 주제였어요. 먹고 사는 건 우리 모두에게 일상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불구하고요. 경제생활(삶)과 경제교과서(앎)의 거리를 어떻게 좁힐지에 대한 계속된 고민을 이어오다가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읽으면서 감탄했습니다. 220쪽의 비교적 짧은 책인데, 한 챕터 한 챕터를 읽을수록 간단한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어서 괴리감이 없었어요.
경제교과서(앎)과 경제생활(삶)과의 거리를 좁히는 방법이 요즘 유행하는 금융투자교육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었어요. 금융투자교육은 돈이 이 사회의 유일한 최고의 가치이고, 개인은 자신의 이윤 추구에만 몰두하며, 심지어 일하지 않고도 돈을 불리는 노하우를 말하죠. 이런 내용이 과연 민주공동체의 시민으로 자라길 바라는 공교육기관인 학교에서, 사회교사가 해야 하는 경제수업인지에 대해 의심이 들었어요.
우리 대부분은 노동자로 살아가는데, 주류경제학을 그대로 옮긴 경제교과서에서 노동과 노동자는 가려지거나, 무시되거나, 가치 절하되는 되거든요?! 그래서 최근 경제교과서와 정반대 편에서 시작된 게 노동인권교육이에요. 노동인권교육은 작게는 청소년 아르바이트의 권리부터 나아가 노동조합 활동까지, 노동과 노동자의 여러 모습에 주목하죠.
경제교과서와 노동인권교육을 연결하고 싶었어요. 노동을 별개로 다루는 게 아니라, 경제교과서의 내용과 논리를 제시하고, 이를 반례, 반박, 비판하는 방식으로 이론적, 현실적, 주관적 한계를 드러내고 싶었어요. “우리는 대부분 노동하면서 먹고 살고, 나의 일상은 누군가의 노동에 기대 살아간다.”는 너무나 당연한 말을 경제수업에서 하고 싶었던 거죠. 삶으로부터 가장 거리가 멀었던 경제교과서의 ‘앎’이 ‘노동’을 통해 우리의 ‘삶’에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책으로 전하고 싶었어요.
현재 공교육에서 다루는 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지금은 경제학(Economics)이라고 부르지만, 19세기 말까지는 주로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y)라고 불렸다고 해요. 경제는 그 안의 순수한 자연법칙이 있는 게 아니라, 현실 사회 및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걸 단적으로 보여주죠. 그런데 경제현상을 둘러싼 정치와 사회에 대한 논쟁적인 의견을 다루기보다는, 경제학의 내용을 그냥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라는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게 경제 교과서의 가장 큰 문제예요.
Knowledge is power. 이 말은 “아는 것이 힘이다”(프랜시스 베이컨)고도 하지만, 다르게 해석하면 “지식은 곧 권력이다.”(호르크하이머&아도르노)이기도 해요. 우리가 무엇을 ‘안다’라는 건, 무엇인가를 ‘지배’하는 것과 맞닿아 있는 건데요. (사회)과학은 보편적 가치와 진리를 찾아가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걸 주도하는 연구자, 집단, 국가가 권력을 행사하고 그 대상을 지배할 위험도 있다는 것입니다. 주류경제학은, 그걸 옮긴 경제교과서는 자본가, 사업가, 관리자의 시선에서 나온 논리와 서술들이에요.
그래서 『십 대를 위한 교실 밖 경제학』에선 객관적이고 과학적, 중립적이라고 믿어왔던 경제교과서의 말들, 이론, 그 전제들에 계속 질문하는 서술을 했어요. 경제현상이 자연의 섭리나 법칙이 아니라, 아주 복잡한 정치과정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를 기대하면서요.
‘노동인권수업’을 해본 경험을 밝히셨지요. 교과서는 논외로 두고 교사에게 자율권을 주어 사회 수업을 꾸릴 수 있다면, 어떤 수업을 해보고 싶나요?
제게 교사로서 완전한 자율성이 주어진다면, 성과 없는, 평가 없는, 그냥 같이하는 시간을 늘리고 싶어요. 그런 방향에서 매년 하는 이벤트가 있는데요. 바로 봄 산책이에요. 4월 초봄에 인근 생태공원에 가서 벚꽃나무 아래에서 사진도 찍고, 그늘 의자에 앉아 ‘멍때리기’, 좀 거창하게는 명상 시간을 가져요. 아무런 조건, 대가, 경쟁도 없이 15분간 멍하니 시간을 보내요. 정적, 고요함, 차 소음, 새소리를 들으며 그저 가만히 있는 거예요. 워낙 스마트폰 번쩍한 화면에 중독된 탓인지 좀처럼 멍하니 있기도 어렵지만, 학생들은 그 전에 느껴본 적 없는 묘한 감정을 경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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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작의 프로필을 보다가 두 문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생존형’ 교사가 아니라, ‘잘 살아가는’ 교사가 되고 싶다는 거다. 에스엔에스를 하지 않는다." 요 문장을 썼던 선생님의 마음이 궁금합니다.
교사도 학생보다 먼저 태어나(‘선생’님)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한 구성원이고, 시대 상황에 영향을 받아요. 저 역시도 초경쟁 한국사회에서 살다 보니, 주체적으로 삶을 꾸려갔다기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급급했어요. ‘살아갔다’기 보다 ‘살아졌다’에 가깝죠. 여러 불평등을 가리고 형식적인 공정성 위에 개인이 얻은 성취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능력주의. 수능과 학점, 임용고사의 촘촘한 경쟁을 통과한 요즘 시대의 교사야말로 성실의 아이콘, 능력주의를 체화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교사로도 경쟁적으로 살아가야 하는가. 자신들이 살아온 방식대로 능력주의 교사가 학생들에게 성취과 성과를 압박하는 게 옳은가에서 회의가 들더라고요. 그렇지 않고 싶어서, 저부터가 그저 ‘잘 살아가는 교사’가 되고 싶다고 했네요. 교사로서 제가 좀 다르게 살기를 하면, 학생들에게 더 큰 성과, 성취, 경쟁을 강제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을까 해서요. 학생들이 적어도 저와 대화할 때나 사회수업 시간에 경쟁의 압박이 아니라, 마음이 편하게 말하고 듣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요.
중학교 사회수업의 현장도 궁금합니다. 학생들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최근 한국사회가 혼란이잖아요. 12.3 불법 계엄, 극우세력의 준동, 혐오의 정치까지. 그리고 이어진 탄핵과 대통령 선거까지. 정치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데요. 학생들도 현실 정치와 실제 정치에 대해 대화하거나 질문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정치기본권이 없는 교사가 할 수 있는 말과 수업의 제약이 큰데요. 이 문제도 문제지만, 정치 영역에서의 가장 큰 문제의 (남)학생들의 극우화, 혐오 언행 등은 벌써 10년이 넘은 문제입니다. 말을 잘하고 박식한 친구들이 극우 커뮤니티에서 얻은 정보를 사실인거 마냥 말하고 다니죠. 사회교육은 민주시민교육이고, 민주시민교육에서도 반혐오 교육이 절실해요. 사회교사들이 극우 학생에 대해 단호히 대응하면서도, 사회교실에서 현실 정치를 적극적으로 다루는 묘안을 계속 생각해가면 좋겠어요.
이 책을 읽고 경제를 더 깊이 공부하고 싶어진 독자들에게 또 한 권의 책을 추천한다면요?
비판은 그 비판 대상을 잘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비판하고 있는 나의 위치도 알아야 해요. 스스로가 어떤 가치, 관점에 서있는지 모른다면, 비판은 비판이 아니라 그냥 여기저기 헐뜯는데 그칠 거예요. 반공 컴플렉스가 심한 한국에선 외면되거나 폄하되지만, 여전히 유럽을 넘어 인류 지성사의 가장 위대한 인물인 칼 마르크스. 저는 그가 쓴 『자본론』의 도움으로 경제 세상을, 주류경제학을, 경제교과서를 비판하는 제 위치를 잡게 됐어요. 그 연장선에서 책을 추천하고 싶은데요.
청소년들에겐 강신준 교수의 『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연다』를 권하고 싶어요. 마르크스와 『자본론』에 대해 알기 쉽게 친절하게 쓰인 책이에요. 또 성인 독자들에겐 고병권의 『북클럽 자본1~12 시리즈』를 권합니다. 철학자의 통찰력 위에 자본론을 깊고 깊게, 찬찬히 같이 읽어갈 수 있어요. 무엇보다도 『자본론』 공부를 권합니다. 바로 시작하기 망설여진다면 돌베개에서 김수행 선생님이 쓴 『자본론 공부』를 읽은 다음 도전하시는 것도 좋겠네요. 나는 그저 이 세상을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데, 자본론을 읽고 나서는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이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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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otage _〈사람사는세상 책문화제〉를 마치고
읽고, 쓰고, 만드는 우리 삶을 위해
_〈제1회 사람사는세상 책문화제〉 TF 디렉터, 돌베개 고운성 (@woogie_moment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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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꾼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철학에서 출발한 책 축제, 〈제1회 사람사는세상 책문화제〉가 지난 6월 27일부터 29일까지 3일간, 노무현시민센터에서 열렸습니다. 돌베개를 비롯한 52개 출판사가 참여했는데요. 노무현재단 주최로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인사회’)가 주관했던 축제의 현장, 그리고 뒷이야기를 북:레터 〈행간과 여백〉에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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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에서 『노무현 전집』이 출간된 것, 모두 아시죠? 각별한 인연이 있기에 이번 축제를 더 정성스레 준비하고 싶었습니다. 축제의 중심이 되는 '책'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했고, 참여하는 출판사들도 단순히 책 판매를 넘어서 책 축제를 즐기는 시간이 되길 바랐습니다.
“책에서 내가 갖고 있던 가설이 검증된 결과를 발견했을 때 제일 행복합니다. 그만큼 책 읽는 것이 아주 재미있고 좋습니다.” 제가 참 좋아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인데요. 〈사람사는세상 책문화제〉에 오신 분들도 같은 생각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출판, 서점 모두 어렵다고 하잖아요. 하지만 누군가에게 필요하고 좋은 책은 꾸준히 만들고 또 알려야 할 책임이 있죠. 이번 책문화제는 모두가 연대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끝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매년 책에 관한 다양한 행사가 열리지만 가끔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거든요. 너무 잘 팔리는 책에만 집중하는 게 아닐까, 유명인만을 내세운 홍보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소외되는 작은 출판사와 동네서점이 있지 않나, 그런 고민들이 있었기에 ‘책문화제’ 만큼은 누구 하나 들러리가 되지 않는 행사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모두가 주인공인 축제를 만드는 게 슬로건이라면 슬로건이었던 것 같아요.
‘인사회’ 연합부스에는 출판사별 대표 도서 10종을 출품해 모든 책이 골고루 집중 받게 했습니다. 파주 쩜오책방에 특별히 부탁해 큐레이션을 했고요. 주요 책문화프로그램은 알라딘에서 판매했는데 ‘인사회’ 회원사 프로그램의 경우 관람객들에게 티켓 값을 현장에서 페이백 해드렸어요. 티켓 가격에 해당하는 금액을 현장에서 책을 살 수 있는 쿠폰으로 드린 거죠. 사실 이번 행사는 십시일반의 마음으로 시작됐어요. 읽고 쓰고 만드는 사람으로서 고민만 하지 말고 함께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이었죠. 인사회, 한서협, 책방넷에 침여한 〈퍼블리셔스 테이블〉 주제를 ‘출판유통의 기로와 활로’로 잡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노무현재단은 지난 5년간 〈알릴레오북스〉를 통해 시민들과 함께 책을 읽고, 깊이 있는 사유를 나눠왔습니다. 그동안 공개방송을 여러 차례 했지만 책문화제를 통해 독자들을 만난 건 이번이 처음이었죠. 이번 책문화제에서는 <알릴레오북스>를 비롯해 <월말 김어준>, <정준희의 토요토론>, <김혜리의 조용한 생활> 등의 공개방송이 열렸고요. 강원국, 권성민, 김제동, 남종영, 심용환, 안미란 등 작가들의 북토크와 이아립의 『이응 품은 미음』 북콘서트와 오지은, 김사월이 함께하는 <내 곁에 사람들>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저도 틈틈이 행사를 지켜봤는데요. 공간의 아름다움 때문일까요,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일까요. 모든 행사에서 느껴진 따뜻한 연대의 마음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밤새 큐레이션해 주신 분들 넘 감동이다. 책을 사랑하던 노무현 대통령과 책을 업으로 삼은 내가 만난 느낌이라 뭔가 나 혼자 뭉클하네.”라고 리뷰를 주신 혜윰터(@hyeumteo) 이세연 대표님의 글이 제겐 무척 감동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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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여러분!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노무현시민센터'가 있다는 사실, 알고 계시나요? 2022년 9월에 개관한 노란빛 벽돌 외벽이 매우 인상적인 공간입니다. 매월 다양한 행사가 열리는데요. 한 번이라도 이 공간에 와 보신 분들은 꼭 재방문을 할 만큼, 운치가 있습니다. 미디어센터를 비롯해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니 꼭 한 번 들러 보세요. 창덕궁 뷰가 무척 아름다운 카페 ‘커피 사는 세상’도 책 읽기에 더 없이 좋은 공간이니, 주말 나들이도 추천합니다.
인사회와 노무현재단은 앞으로도 책문화제를 매년 이어갈 예정입니다. 읽고 쓰고 만드는 우리 삶을 위해, 누구도 소외받지 않는 축제를 만들 테니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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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y Book, Buy Local
책으로 다시 피어나는 은평, ‘이호철 북콘서트홀’
_ 표문송 관장 (@lbch_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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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에 자리한 ‘이호철북콘서트홀(LBCH)’을 들어보셨나요? LBCH는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서 50년간 작품 활동을 이어온 통일 문학의 대표 문인 ‘고(故) 이호철 작가’의 문학적 유산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문화예술공간입니다. 매주 토요일 ‘문예북흥’ 행사를 치러내느라 하루살이가 아니라 ‘일주일살이’의 일상을 살고 있는 표문송 관장이 LBCH의 이모저모를 전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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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북콘서트홀(LEE Hochul Book Concert hall, LBCH)를 개관하면서 총 52주 연속 ‘문예북(book)흥’을 공언했습니다. 약속은 지키라고 있잖아요. (웃음) 우직하게 하다 보니 물줄기도 잡히고 산도 옮겨지고 있습니다. 예상 밖의 폭발적인 반응에 한 번 더 제 발등을 찍었습니다. 이왕 하는 거 “문예북흥 100주 가자”라고 말해버렸습니다.
은평이 1970년대만 해도 문학의 도시였습니다. 과거 문인, 언론인들이 많이 살아서 ‘기자촌’이라고 불리는 동네가 있었죠. 그런데 세월이 지나고 모든 경제 문화의 중심이 강남으로 옮겨가다 보니 문화적으로 소외받는 지역이 됐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영광, 즉 문학의 거리, 문학의 향기를 되살리자는 의미에서 ‘LBCH’가 탄생했습니다. 은평을 다시 ‘서울 서북부 지역의 새로운 문화거점’으로 만드는 중심점이 되게끔 기획했습니다.
이를 위한 첫번째 프로그램이 ‘문예북흥’입니다. 눈치채셨겠지만 르네상스, 즉 ‘문예부흥’에서 모티프를 따왔습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암흑기였던 천년에 가까운 중세의 긴 터널을 통과하고 맞이한 게 르네상스였죠. 문예북흥은 “문학에서 예술로, 책을 통한 문예부흥”의 뜻입니다. 즉 문학에만 머무르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죠.
매주 토요일 열리고 ‘문예북흥’ 행사는 문학으로부터 출발해 음악, 미술, 과학, 역사, 창조성 등 10개 장르의 예술 모두에게 열린 강연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 중심점을 ‘책’으로 삼았습니다. 문화예술 전방위적 접근이지만 한 권의 책을 텍스트 삼아서 강연하자는 셈이죠. 문학이 문학 밖에서 문학을 발견하자는 것, 바로 문예북BOOK흥의 의미입니다. 지금까지 시인 박준, 영화평론가 오동진, 화가 김현철, 건축가 유현준, 가수 하림, 소설가 정유정, 대중음악평론가 강헌, 미술사학자 유홍준 님 등이 강연자로 함께 해주셨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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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북흥’이 현재 31회까지 진행했는데 10회 단위로 관객의 참여도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전회 개근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특히 이제 막 문을 열어 인지도도 전혀 없고 홍보도 미흡했던 1~10회의 경우만 얘기하자면, 10회 중 10회 전회 참석자가 2분, 한 번만 빠진 9회 참석자가 2분 있었습니다. 첫 회 때 오신 분이 그날부로 바로 충성고객이 된 겁니다.
예상 밖의 호응에 저희가 먼저 놀랐습니다. 그래서 이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문예북흥의 강연자를 ‘문예북흥러’라고 부르는데 반해, 참석자 중 이렇게 개근하시는 분들을 ‘문예북흥러버(lover)’라고 부르기로 하고 이 분들을 위한 명예의전당을 만들었습니다. 문예북흥러의 홍보 포스터와 똑같은 형식으로 ‘문예북흥러버’의 홍보물도 만들어 명예의전당에 헌액했죠. 한 분께서 이런 소감을 밝히셨습니다. "은평구 주민의 일원이 된 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제 문화적 욕구를 주로 채우던 곳은 종로구, 용산구였습니다. 이젠 은평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수준 높은 문화 사랑방을 만들어 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제가 더 감동을 받았습니다. 지역의 문화소비를 위한 시설의 필요성을 절감케 한 반응이었습니다.
올해 초, 이호철북콘서트홀(LBCH)은 세계 3대 디자인상 중 하나인 ‘IF Design Award 2025’에서 커뮤니케이션 부문 뮤지엄 브랜딩 분야에서 본상을 수상했습니다. 사실 이 상은 의도된 상입니다. MI(뮤지엄 아이덴티티)를 만들 때부터 수상을 목표로 했습니다. 공기관에서 운영하는 신생 문학관이다 보니 인지도는 제로에 가까울 수밖에 없어서, 최단 시간에 홍보 효과를 내기 위해 아예 작정하고 세계 디자인 어워드에 도전했죠. 효과요? 올해 우리나라 자치구에선 유일하게 받은 상이기 때문에 톡톡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우리 박물관과 문학관의 브랜드 파워가 생겼죠. 특히 지역민들이 LBCH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고,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합니다. 수상 기념 이벤트로 한 달간 ‘문예북흥’ 무료 초대 행사를 했는데 연일 매진사례를 기록했습니다.
LBCH는 공립박물관이지만 참가비는 5000원을 받고 있습니다. 문화에 공짜가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많든 적든 ‘내돈내산’이 되어야만 문화예술의 가치를 내가 소유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받은 참가비인데, 이벤트 기간에는 무료로 제공하니 무척 좋아하시더군요.
앞으로 LBCH의 궁극적인 목표는 관람객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뺏는 일입니다. 정말 바라는 건 그 손에 종이책이 들리는 일입니다. 이곳에 머무는 시간만큼은 아날로그적인 문화예술 경험이 이뤄졌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스마트폰 뺏기 방안도 진지하게 고려 중이에요. 예를 들어 입장하면서 스마트폰을 저희에게 맡기고 온전히 독서에만 집중하는 관람객에게 적당한 리워드를 주는 거죠. 책읽기의 호흡과 인내심을 만들고 싶습니다. 스마트폰 자판보다 손에 연필을 쥐고 사각사각 소리를 내며 글씨도 써보게 하고요. 그래서 하반기에 책 읽기 대회, 쓰기 대회도 계획 중입니다.
아울러 내년엔 이호철 선생님 10주기입니다. 그리고 당대의 베스트셀러었던 1966년작 『서울은 만원이다』가 나온 지 60년 되는 해입니다. 10주기 기념사업이자 『서울은 만원이다』 환갑잔치를 구상 중에 있습니다. 엄청난 유물에서 아이디어를 찾았기 때문에 굉장히 흥미로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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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X LBCH
다다읽선 : 열하일기 완독클럽
돌베개가 LBCH와 함께 할 첫번째 본부원이 되었는데요. ‘열하일기 완독클럽’을 시작으로 LBCH와 함께 콜라보레이션 할 출판사, 작가, 동아리들이 많아져 하나의 ‘책 읽기 운동’이 되면 좋겠습니다. 첫 파트너가 돌베개인 것은 ‘다다읽선’의 미래를 위해서 매우 희망적인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첫 단추를 아주 잘 꿴 기분이랄까요. 감이 좋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책 읽기 프로그램의 공급이 많아지고 자발적인 참여가 활성화되면 좋겠습니다. LBCH는 벌써 독자 중심으로 ‘시 읽기 다다읽선’ 두 번째 프로그램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다다읽선의 효과가 바로 나타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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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도착한 이야기
_전승민 문학평론가, 『다시 만날 세계에서』 공저자 (@mark.onthewall)
문학을 비평하는 이 삶이 데려올 말년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 연구자가 자신만의 주제를 발견하기 위해 기존 논의들을 수집하고 그것들을 검토하는 작업을 선행하듯, 나는 나보다 먼저 비평을 해온 선배들의 삶을 떠올려 보려 했다. 그러나 비평만으로는 비평가가 지닌 삶의 총체를 경험할 수 없었기에, 시도는 번번이 불투명한 안개 속으로 흩어지길 반복했다. 그런 와중에 난데없이 맞이한 윤석열 정부의 계엄 선포는 앞선 고민들이 무색하게 인간의 실존 자체를 위협하는 겨울을 선사했다. 비평가로서의 미래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현재가 당장 위태로웠다. 과연 미래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지조차 의문하는 국면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긴 봄이 지나고 새로운 여름과 함께 도착한 김명인의 회성록 『두 번의 계엄령 사이에서』는 드디어 발견하게 된 한 비평가의 미래, ‘최초의 미래’였다. 그리하여 그는 내게 비평하는 삶의 길을 먼저 걸어간 한 사람의 선생(先生)이 되었다.
선생이 겪은 1980년의 무림사건의 “거대한 주술”(12쪽)은 2020년의 무죄 선고를 기점으로 40년 만에 풀린다. 내가 여태 살아온 삶의 모든 시간을 더한 것보다도 긴 시간을, 한 사람의 개인적인 삶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공적 토대를 단단히 옥죄던 주술이 파괴되기까지 걸린 시간의 부피를 나는 짐작할 수 없다. 이후 세대에게 역사는 매체를 경유한 아카이브라는 간접적 차원에서 최선으로 경험될 뿐이다. 그러나 때로 어떤 진실의 각성은 뒤에서 바라보는 이들에게만 허용되기도 한다. 나는 선생의 삶을 통해 고통 속의 아름다움이란 고통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지나간 자리에 남긴 흔적 속에 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더불어, 여기에는 고통을 겪어낼 수 있는 동사로서의 삶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함 또한 뒤이어 깨닫는다. 죽음과 고통 속에서도 삶을 찾아내고자 하는 문학과 비평의 집요함은 바로 이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는 지난 겨울 광장을 밝힌 2030 여성들과 응원봉의 빛이, 이 책의 가제였던 ‘멜랑코리아 로맨티카’의 우울감을 “비관도 낙관도 쉽사리 허락하지 않는”(15쪽) 역동의 힘으로 전환시켰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역으로, 선생이 일평생 지녀온 문제 의식인 “한국문학을 공부한다는 것과 한국사회의 올바른 진로를 타개해나가는 일이 어떤 관련을 가지는가”(94쪽) 하는 고민을 몸소 살아낸 선생의 시간 속에서 감히 젊음의 미래를 본다. 그가 옥중에서 이어나간 치열한 사유의 투쟁이 방증하듯 (“진리는 주체와 객체의 실천적 관계를 통해 구성되는 상대적 전체성의 계속적인 집적 과정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지, 한꺼번에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75쪽) 동시대의 혁명은 과거와 현재의 협력 속에서 윤리와 논리, 그리고 철학의 차원을 초과하는 “커다란 잉여의 심연”(102쪽)으로 체현된다. 선생이 ‘시’라고 명명한 이것─“아직 오지 않은 것들, 이름 붙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기대”(103쪽)이기에 이성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차원─은 그와 내가 동시대인으로서 함께 ‘다시 만날 미래’를 창안하는 과정이다.
머리와 심장이 뜨거워진다. 선생에게는 두 번째인, 나에게는 생애 최초인 계엄의 겨울을 보내고 맞이한 이 여름에, 아직 오지 않은 나의 시간을 그의 삶 위에 겹쳐본다. 그간 골몰했던 고민의 방향은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곧장 수정된다. 미래가 그저 닥쳐오기만 하는 것이라면 그곳에서 삶의 주권은 내게 있지 않다. 그러나 욕망과 투쟁으로 당겨오는 미래라면 그때 삶의 주권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것이리라. 그렇기에 이 책은 결코 후일담이 아니다. 오늘의 젊은 문학과 비평 앞으로 미리 도착한 미래의 이야기다. 젊음의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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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DESIGN _『두 번의 계엄령 사이에서』
흐르는 강물의 윤슬처럼
"그러나 기다릴 수 없음은 강물,
기다리지 않음으로 하여 나는 언제나
역사의 뒷전에 머무르고
내 오류의 크나큰 무게를 적재하고
강물은 항상 떠나고 있는 것."
(김명인, 『두 번의 계엄령 사이에서』, 104–105쪽)
두 번의 계엄령 사이에 그 시대의 상흔을 모두 품고 그저 흐르는 강물, 기다려주지 않고 강물처럼 항상 떠나고 있는 시간들. 1979-2024까지, 각 정권별로 행간을 나누어 두 번의 계엄령 사이의 시간들을 흐르는 강물의 윤슬처럼 표현했어요. 효과적인 시각적 표현을 위해 표지에 어둡고 묵직하지만 빛나는 크롬 박을 활용했습니다.
표지를 넘기면 폭력적이었던 군부의 모습이 담긴 ‘1979년 계엄령 직후의 사진’이 있고, 뒤표지 끝에는 응원봉을 들고 시위에 나갔던 시민들의 모습이 찍힌 ‘2024년 계엄령 직후의 사진’이 있어요. 두 번의 계엄령 직후의 실제 풍경을 책의 앞뒤로 넣어 각각의 시대 분위기를 전하는 동시에, 본문 또한 그 두 번의 사건 사이에 흐르도록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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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을 클릭하시면 알라딘 북펀드 창으로 넘어갑니다.
해방 80년, 들리지 않았던 역사의 목소리에서 미래를 조망하기 위해
정병준 교수가 세계를 떠돌며 완성한 김규식이라는 모자이크
“정치적 성패로 따지자면 성공하지 못한 사람의 역사이지만 그 삶 속에 담겨 있던 진정성과 불꽃같은 열정의 순간들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단신으로 한국통신국을 설립·운영하며 3·1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던 김규식은, 한국 근현대사 속 ‘외교’의 빛나는 순간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좌우합작과 민족단합을 통해 자주독립을 추구했으며, 동서양과 자본주의·사회주의, 미국·중국·러시아를 넘나든 진정한 세계인이었다.
『김규식과 그의 시대』는 자주독립을 꿈꾸었던 이들의 삶과 선택에 주목하며, 단순한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을 넘어 역사의 다양한 가능성에 귀 기울인다. 정병준 교수는 김규식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새롭게 발굴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의 시대’의 명과 암을 함께 기록함으로써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에 관한 거대한 역사 논픽션을 완성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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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북:레터 〈행간과 여백〉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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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엄지혜
에디터 정지연
마케터 김영수, 고운성
-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77-20(문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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