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곁을 바라보게 하는 책
“책을 꼭 읽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들어보신 적 있나요? 저는 종종 있습니다. 때마다 답은 조금씩 달랐지만 이 말은 빼놓지 않습니다. “반드시 같은 건 없죠. 책 많이 읽는 사람의 인생이 더 훌륭하다는 보장도 없고요. 다만, 타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최고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매체임은 분명합니다.” 누군가는 ‘타인의 삶을 꼭 알아야 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혼자 잘살면 무슨 재미입니까?”라고 보태고 싶습니다. 배워서 남 주는 게 가장 좋은 것처럼, 내 사고(思考)만으로 똘똘 뭉친 인생은 한계가 있겠죠.
<돌베개 북 매거진> No.16. ‘행간’에서는 『나는 전쟁에 불복종한다』의 최우현 저자 인터뷰와 김민해 디자이너의 표지 디자인 후기, 정지연 마케터의 『2.5층 너머로』 프리뷰를 전합니다. ‘여백’에서는 한광재 편집자의 ‘2025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출장기, 장일호 <시사IN> 기자의 그 누구도 누락시키지 않겠다는 다짐, 그리고 특집 부록으로 선유도서관 최가현 사서 인터뷰를 담았습니다.
16호에 실린 모든 글을 읽어보니 전부 ‘타인’과 ‘세계’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 일상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만큼, 곁을 살피는 마음도 중요합니다. 잇고 닿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일독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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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부제를 읽으셨나요? “어느 귀먹은 군인의 고백”. 청력을 잃은 군인이 ‘전쟁’을 이야기하는 독립연구자가 되기까지. 최우현 작가는 “고통을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이야말로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최고의 심리적 방어기제라고 믿기에” 책을 썼습니다. 괴롭게 읽히고 가슴을 뜨끔하게 만드는 책이지만 ‘전쟁’을 그저 시청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일을 멈추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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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쟁을 무서워하고 있었다
언젠가 시민단체 활동가 선배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던 적이 있어요. “우현 씨 머릿속에는 전쟁밖에 없는 것 같아.” 선배는 또 이렇게 덧붙였어요. “아직도 군대에 갇혀 있는 거야? 그런데 어떨 때는 그런 분위기가 좀 위태롭게 느껴지기도 하거든.” 당황스러웠죠. 군을 나온 지 10년이나 지난 시점에 그런 말을 들었으니 말이죠. 그렇지만 선배의 지적은 정확했어요. 그때도 지금도 제 관심사는 여전히 전쟁에 있죠. 왜 그런 걸까요? 인정하기 싫지만 나는, 전쟁을 사랑하고 있었던 걸까요?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책을 쓰게 됐어요. 입으로는 평화를 외치면서도 마음은 전쟁의 열탕 언저리를 맴돌고 있는, 모순된 정체성을 정리해 보고 싶었죠. 쓰다 보니 알겠더군요. 나는 전쟁을 무서워하고 있었던 거예요. 너무나도 무서웠던 나머지, 이리저리 떠벌리며 호들갑을 떨어대고 있었던 거죠. 그리고 그 두려움을 끝내 극복하지 못했던 겁니다. 아마 군에서 얻어온 여러 ‘불가역적’ 질병들 덕분이었겠죠. 이 질병, 고통들은 십수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이 나를 옭아매고 있어요. 그러면서 늘 이렇게 공갈하죠. “너는 전쟁을 견딜 수 없을 거야”라고 말이에요. 저는 이 고통에 ‘복종’합니다. 그러므로 전쟁에 ‘불복종’합니다.
나 자신을 먼저 반성의 주체로 올리기
투고 당시 가제는 “군인은 살인자가 아니다”였어요. ‘나’가 아니라 ‘군인들’을 전쟁에 불복종하는 주체로 가져오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칫 큰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제목이구나 싶었어요. 이 제목은 해석하기에 따라서, 군인의 ‘피해자성’을 강조하는 선언이 될 수 있잖아요? 물론 전쟁에서 군인이라는 존재는 가해자임과 동시에 피해자라는 양가적 정체성을 가지죠. 그러나 군인들의 피해자성이 그들이 저지른 폭력을 희석시켜주는 명분이 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특히 국가 폭력에 생(生)을 잃은 민간인 피해자들을 생각해본다면 말이죠. 그렇게 비명횡사한 사람들의 무덤 앞에 서서 “군인도 피해자다”라고 외치는 건 (혹은 그런 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을 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폭력이 될 수 있겠다는 우려가 있었어요. 무엇보다 ‘모든’ 군인이 과거사에 대한 자신의 가해자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래서 아쉽지만 ‘군인’이라는 집단이 아닌, ‘군인이었던’ 나 자신을 먼저 반성의 주체로 올리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언젠가는 ‘우리는’ 전쟁에 불복종한다는 책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꾸중에 대한 ‘응답’
책을 쓰면서 망설였던 내용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어머니들의 절규’였어요. 저는 병사들의 세계를 모릅니다. 장교라는 지위에 기대어―편안하게―그들을 착취했던 그룹의 일원이죠. 마찬가지로 병사 자녀를 둔 어머니들의 심정도 감히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런 제가 병사들의 고통, 특히 부상이나 사망 사건·사고에 대한 내용을 쓴다는 것 자체가 일종의 위선이겠죠. 어머니들의 눈에 저는 어떤 존재로 비칠까요? 폭력의 하수인? 공동정범? 무엇으로 부르시든 간에 제 자리는 피고인석에 가까울 겁니다. 당시는 운이 좋게도 ‘증인석’ 정도에 앉아 있었지만요. 법정에 선 증인에게는 ‘응답 책임’이 있습니다. 피해자들이 호명하면 언제든 일어나 진실을 말해야 하죠. 증인이 피고의 ‘변호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책에는 쓰지 못했지만, 병영폭력 사망자 유가족들 중 한 분이 제게 이런 말을 하셨어요. “잘못했다고 말하는 인간이 어찌 하나도 없느냐”고. 그때 들은 꾸중에 대한 ‘응답’을 이제야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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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군대,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제가 ‘일반인’보다 전쟁에 대해 더 잘 안다고 생각지 않아요. 오히려 군인이었기에 더 모르는 부분이 많겠죠. 군인들이 전쟁을, 그러니까 ‘폭력’을 알까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폭력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건, 폭력의 피해자들이겠죠. 한국의 현대사에서 군인들은 명백히 폭력의 ‘행사자’였습니다. 수십만, 많게는 백만 명에 가까운 ‘남한’ 국민들이 ‘남한’ 군경에 의해 학살당했죠. 올해 7월 초, 그렇게 아버지를 잃은 유족 한 분을 만나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어요.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 부역자로 몰린 아버지가 대전 산내 골령골로 끌려가 총살당하셨다고 했죠.(2013년, 재심에서 무죄 판결) 제가 그분 앞에서 감히 폭력을 논할 수 있었겠어요? 지금도 골령골뿐만이 아니라 한국 전역의 이름 모를 땅속에는 ‘발굴’되지 못한 피‒학살자들의 유골이 방치돼 있어요. 저는 그 유골의 주인들이 죽는 순간 자신의 ‘망막’에 새긴, 최후의 이미지들을 상상해 보고자 노력합니다. 바로 거기에 폭력의 실체가 남아 있을 거예요. 그리고 그 실체의 상당수가 군인의 모습을 하고 있겠죠.
전쟁에 지나치게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확실한 한 가지는, 우리 대다수가 전쟁을 ‘시청’하는 시청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겠죠. 예컨대 우리는 팔레스타인 가자에서 일어나고 있는 처참한 도시 파괴의 현장을 유튜브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화마가 우리 스마트폰 액정을 거슬러 넘어오진 않죠. 안전합니다. 정확히는 ‘안전한 것처럼’ 느껴지죠. 사람들이 이런 ‘시청’의 안락함에 익숙해지면서, 전쟁을 ‘3인칭’의 비극으로만 받아들이는 냉소적 주장들이 힘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로 ‘전쟁에 지나치게 무관심해져 버린’ 사람들도 있었을 거고요.
우리가 ‘시청자’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까요? 완전한 극복은 불가능하리라 봅니다. 지금 당장 화면 속으로 들어가 ‘1인칭’의 전쟁 당사자가 되지 않는 이상에요. 다만 3인칭의 시점을 ‘2인칭’으로 전환시키는 일 정도는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 그들이 아닌, ‘나’와 얼굴을 맞대고 있는 ‘너’의 고통으로 인식하고 감응을 시도해 보는 거죠. 징병 제도 아래서 군 복무를 강제당하고 있는 한국 젊은이들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경우 어떤 경로를 통해 2인칭으로의 전환이 가능해질까요. 자녀를 군에 보낸 어머니의 시점은 어떤가요. 그 어머니들이야말로 가장 따뜻한 ‘2인칭’의 눈을 갖고 계시지 않을까요. 적어도 이런 시점에서 군대와 전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요즘 군대 좋아졌어∼”라든가 “전쟁은 원래 그런 거야” 따위의 ‘시청자적 반응’은 나오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군인, 연구자, 시민기자에서 작가가 되기까지
워낙 말이 서툴러서 글을 써요. 물론 컨디션이 좋으면 제법 유려하게 생각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오래 지속되진 못하죠. 금세 흥분해 버리고 말거든요. 그래서 낯설고 어려운 사람과 대화할 때 어려움을 겪습니다. 반면 글쓰기는 그런 약점을 어느 정도 감출 수 있잖아요. 쓰다 막히면 시간을 두고 다듬을 수도 있고요. 이런 점에서 제게 글쓰기란 ‘문명화된 말하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대상과 며칠 혹은 몇 개월에 걸쳐 이야기를 나눈다고 생각하고 수정을 거듭하는 편이에요. 제게 글쓰기는 ‘이롭다’는 차원을 넘어 일종의 사회생활인 셈이죠.
이 책을 각별히 권하고 싶은 독자
전쟁과 폭력에 반대해 온 연대 시민들께 바치고 싶어요. 그분들이 앞서 꾸준하게 ‘전쟁 불복종’의 목소리를 내 주신 덕분에 저 역시 뒤늦게나마 평화의 연대 속으로 돌아올 수 있었어요. 최근 매주 팔레스타인 평화를 위한 집회와 행사에 참석하고 있는데요. 광장의 제 목소리가 (혹은 이 책이), 과거의 저를 똑 닮은 ‘호전주의자’들에게 가닿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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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전쟁에 불복종한다』동네서점 저자 북토크 강연비 지원해 드립니다
『나는 전쟁에 불복종한다』의 메시지에 공감하고, 함께 나누고 싶은 동네서점을 찾습니다. ‘반전’과 ‘평화’, ‘연대’의 주제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서점이라면, 아래 링크의 간단한 설문에 응답해 주세요. 응답해 주신 서점 중 3곳을 선정해 강연비를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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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
메시지를 전달하는 하나의 피켓
―『나는 전쟁에 불복종한다』 표지가 나오기까지
김민해 디자이너 (@kimmminhae)
‘전쟁’은 어느새 과거의 일이 아닌 동시대의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이 전쟁의 위협에 놓여 있고, 이들의 고통과는 상관없이 특정 세력의 이익에 따라 잔인한 전쟁은 끝을 모르고 많은 것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전쟁의 고통에 공감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염원하는 사람들이 세계 곳곳에서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시위에서 사람들은 박스 종이 위에 물감이나 사인펜, 혹은 종이를 오려 붙이는 등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식으로 저마다 피켓을 만들어, 직관적으로 대의를 표현합니다. 최우현 작가는 시위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나는 전쟁에 불복종한다』를 통해 명확한 반전의 메시지를 드러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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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시위 장면들은 저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고, 『나는 전쟁에 불복종한다』의 표지를 디자인할 때에도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책 표지를 ‘메시지를 전달하는 하나의 피켓’으로 생각하고, 두 가지 방향으로 시안을 진행했습니다. 하나는 종이를 오려 쓴 글씨를 활용한 피켓처럼 디자인했고, 다른 하나는 길쭉한 네모 안에 꽉 찬 형태의 서체를 활용해 큼직하고 묵직한 분위기로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누구도 전쟁으로부터 안전하지 않은 이 시대,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가 가득 담긴 이 시의적절한 책이 많은 독자께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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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간
애도는 ‘발명’하는 것일까, ‘발견’하는 것일까
―『2.5층 너머로』 프리뷰
정지연 마케터 (@muffyeon)
부쩍 추워진 날씨에 잘 지내고 계신가요? 돌베개에 입사한 지 벌써 반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입사 초기에는 파주가 푸릇했는데, 지금은 가을의 풍경으로 바뀌어 가고 있네요. 매달 발행하는 <행간과 여백> 덕분인지 시간이 빠르게 느껴지는 요즘입니다. 면접에서 “돌베개에서 가장 인상 깊은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고민 없이 꿈꾸는돌 시리즈 『그래서 우리는 사랑을 하지』를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
곧 출간될 꿈꾸는돌 시리즈의 신작, 은이결 작가의 『2.5층 너머로』를 먼저 읽어보았습니다. 2.5층은 주인공 ‘아진’에게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감정을 온전히 토로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구독자님들의 어린 시절에도 그런 공간이 있었나요? 저 역시 소설을 읽으며 떠올랐던 공간이 있었습니다. 자라던 동네에서, 인적이 드문 장소를 찾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마음을 내뱉으러 간 적이 있어요. 어떤 종교도 믿지 않았지만, 매일같이 그곳에 찾아가 무엇이든 조잘조잘 토해냈던 기억이 납니다. 청소년 시절에는 ‘누군가와 다르다’는 감각을 받는 게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친구들 무리와는 다른 생각과 감정, 그리고 경험을 갖고 있으면 그것을 혼자 간직해야 하고 이해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 크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이 소설 속 ‘아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진은 일찍 돌아가신 엄마, 바쁜 아빠, 친구의 죽음을 둘러싼 죄책감 등 말하기 어려운 감정을 이해해 줄 ‘너’를 스스로 만들어내고, 2.5층에서 ‘너’에게 이야기합니다.
“사람들은 종일 같이 있으면서도 진짜 마음을 꼭꼭 숨겼다가 혼자일 때 일기장에만 털어놓는다. 나도 그렇다. 땅과 하늘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2.5층은 내 일기장이다.(...) 나는 그곳에서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무엇보다 너를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너는 세나일 때도 있었고, 엄마가 되기도 했고, 때로는 그 누구도 아니었다. 그래도 괜찮았다.”(181쪽)
어른이 된 지금도 애도는 어렵습니다. 누군가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일은 십 대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무력하고 고통스럽습니다. 애도는 ‘발명’하는 것일까요, ‘발견’하는 것일까요. 아진이는 이야기의 끝에서 결국 그 둘을 모두 해냅니다.
“따개비를 지고 구석진 곳에 덩그러니 있는 나, 그게 내 현실인 줄 알았다. 그렇게 내가 나만 보고 있는 사이, 주위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빛을 나에게 비추어 주고 있었다. 그걸 이제는 안다. (…) 빛을 향해 길을 잡는 것은 오직 나의 몫이었다. 내가 지켜야 할 것 또한 그 빛들이었다.”(199쪽)
아진은 누군가의 상처를 마주한 만큼 자신의 상처도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이해가 안 되면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 “내가 상대방에게 바랐던 것이기도 했”던 것이죠.
『2.5층 너머로』 속 아진이 누군가의 상처를 마주한 만큼, 자신의 상처를 바라볼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따개비처럼 붙어 있던 슬픔을 살며시 떼어낼 수 있는 타인을 만납니다.
마지막으로, 은이결 작가의 ‘작가의 말’ 중 한 대목을 전하며 소개를 마칩니다.
“세상에 짧게 머문 친구를 오래도록 가슴에 품고 있을 아진이가 돌멩이만큼 긴 시간을 보낸 후 일기장에 이렇게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의 나에겐 누구보다 내가 필요했다. 그래서 하찮아 보일 수 있는 나도 차곡차곡 챙겨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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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층 너머로』는 상실의 아픔으로부터 시작하여 마침내 ‘나’와 ‘우리들’로 돌아오기까지의 파란만장한 과정을 아름다운 이야기의 실타래로 풀어놓았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상상한다. 끝내 기다림이 이기는 세계를, 다정함이 이기는 세계를. 그리고 만약 당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잃었다면 나직하게 속삭여 주고 싶다. 계속 사랑해도 괜찮다고, 그리워해도 괜찮다고. 계속 ‘너’를 ‘나’의 세계 안에 품고 있어도 괜찮다고." ― 정여울(작가, 『데미안 프로젝트』 저자) 추천
🤍11월 18일 출간 예정🤍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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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언어는 다리가 될 수 있을까
―2025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출장기
한광재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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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도서전’에 다녀왔습니다. 올해 공식 슬로건은 “The imagination peoples the air”였습니다. “상상력이 공기(=세상)을 가득 채운다”는 의미로, 필리핀의 시인이자 예술가 호세 가르시아 비야(José García Villa)의 시에서 인용한 문구입니다. 행사장 곳곳에 걸린 문구 “The place where the world comes together”도 눈에 띄었습니다. 단순한 책의 장터가 아니라, 상상력이 현실을 연결하고 언어와 문화가 만나 교류하는 진짜 ‘광장’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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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전에서 가장 큰 박수를 받은 연사는 『Mama, bitte lern Deutsch』(엄마, 제발 독일어 좀 배워요)의 저자 타심 두르군(Tassim Durgun)입니다. 그는 독일에서 활동하는 콘텐츠 크리에이터이자 작가로, 쿠르드계 난민 부모를 둔 이민 2세대입니다. 유튜브와 틱톡을 통해 이민자에 대한 차별과 독일 사회의 제도적 문제를 풍자한 작가로, 첫 책에서 언어를 매개로 한 정체성과 소속감의 문제를 섬세하고 유머 있게 풀어내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많은 관객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그는 어머니의 통역사로 살아야 했고 병원, 학교, 행정기관에서 어른들 대신 문서를 읽고 설명했습니다. 타심 두르군 작가는 “어른이 되어야 했던 아이”로 저런 유년 시절을 이야기하며, “엄마를 대신해 설명해야 했던 순간마다 두 세계가 어긋난다는 감각이 선명해졌다”고 밝혔습니다. 책 제목은 단순한 부탁처럼 들리지만, 그 안에는 화, 슬픔, 애틋함이 뒤섞여 있습니다. 이 개인적인 경험은 곧 독일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습니다.
“엄마가 독일어를 배우지 않은 것이 아니라, 배우기 어렵게 만든 사회가 있었다.” 그는 언어가 단지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누가 ‘온전한 시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가르는 기준이 된다고 말합니다. “독일어를 잘하면 존중 받지만, 그렇지 않으면 쉽게 침묵 당한다”는 말은, 언어가 곧 존재의 자격이 되는 현실을 비판한 대목이었습니다.
실제로 독일 인구의 4분의 1은 이주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제도와 일상 속 차별은 여전합니다. “언어는 나를 배제하지만, 동시에 나를 만든다. 하지만 나는 내 언어보다 더 크다.” 이 말은 단지 한 이민자의 서사가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에도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이야기일지 모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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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책보다 굿즈’ 현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책이 중심이었고, 굿즈는 조화를 이루는 부가 요소였습니다. 특히 책을 하나의 오브제로 다듬는 시도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절단면까지 디자인을 적용하거나, 표지와 제본, 후가공을 정교하게 조합한 책들이 많았습니다. ‘읽는 책’을 넘어, ‘소장하고 싶은 책’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또 흥미로웠던 것은 여러 굿즈에 한글이 디자인 요소로 활용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해외 관람객의 시선에서 한글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힙한 문자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듯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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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나는 할 수 있지만, 내 친구들은 할 수 없는 일
조촐하게나마 현판식을 했다. 노동조합 사무실이 따로 없는 작은 회사라 위치를 고민하다가 제일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편집국 문에 내걸었다. 성소수자의 자긍심을 담아 만들어진 길벗체로 ‘우리는 무지개 동지입니다’라고 쓰인 A4 용지 크기만 한 현판이었다. 몇몇이 마감하다 말고 다가와 그 앞에서 인증사진을 찍었다. 현판 문구 아래에는 무지개빛 펭귄 두 마리가 어깨를 붙인 채 쉬고 있다. 각각 무펭이와 동펭이로 척박한 환경에서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의 온기로 품어주는 펭귄을 모티 삼아 만들어진 캐릭터다. 무지개 동지, 줄여서 ‘무동이’는 성소수자 권리를 옹호하고 연대하는 사람을 뜻하는 외래어 ‘앨라이(ally)’를 대신해 2023년 민주노총이 공모전을 열어 선정한 이름이다.
오가며 현판을 보다가 『성소수자 지지자를 위한 동료 시민 안내서』(지니 게인스버그 지음, 허원 옮김, 현암사 펴냄)에 나오는 사례 하나가 떠올랐다. 한 성소수자 대학생 이야기다. 그가 수업을 듣는 건물에는 LGBTQ+에게 안전한 공간임을 뜻하는 무지개 스티커를 문에 붙여둔 교수 연구실이 두 곳 있었다. 학생은 때로 늦은 저녁까지 학교에 남았다. 아무도 없을 때를 기다렸다. 스티커가 붙은 연구실 앞 복도를 왔다 갔다 했다. 누군가가 나의 존재를 이해하고 긍정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그저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무지개 스티커를 붙인 해당 교수들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한 학생을 구한 셈이다. LGBTQ+에 대한 가시적 지지, 작은 실천이 이처럼 “누군가의 목숨”을 살린다. 무지개를 보란 듯 전시하고, 마땅히 환영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무지개 동지로서 나는 누군가를 누락시키지 않는 말에 관심이 많다. 더 많은 사람을 껴안을 수 있는 말을, 보다 많은 사람이 포함되는 포용적인 표현을 고민한다. 나는 사회에서 지정받은 성별과 내가 정체화하고 있는 성별 정체성이 일치하는 시스젠더 여성이고, 남성에게 성적 끌림을 느끼는 이성애자로 ‘비퀴어’이지만 ‘퀘스처닝(Questioning)’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을 때 큰 해방감을 느꼈다. 자신을 특정 정체성으로 정의하지 않고 정체성을 탐색하며 질문처럼 살 수도 있다니 정말 근사하다고 생각했다.
그때부터였다. ‘선택지’가 있는 곳, 이를테면 외국 웹사이트에 가입할 때면 굳이 성별을 여성으로 특정하지 않았다. 2021년 취재 차 방문했던 아이슬란드 사전 입국 심사에서도 Unspecified(불특정)를 골랐다. 2019년 아이슬란드는 ‘성 및 젠더 자율성에 관한 법안’을 통과시키며 자신의 성별을 명시하지 않아도 되는 법을 만들었다. 브린디스 뱌르나도티르 국제앰네스티 아이슬란드 지부 활동가는 이에 대해 “젠더는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개념이며, 여기에 자신을 구겨 넣는 걸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거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성소수자 지지자를 위한 동료 시민 안내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대목도 그 말과 맞닿아 있다. “좋은 앨라이가 되기 위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체성을 반드시 알거나 낱낱이 이해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명심하자. 그 대신 30초간 춤을 추고 지구상의 여러 사람이 지닌 다양성을 축하하도록 하자.”
함께 사는 동거인을 성별이 특정되는 ‘남편’으로 부르지 않는 것도 “꽤 그럴듯한 앨라이”가 되기 위한 작은 실천 중 하나다. 가끔 강연할 일이 생기면 이런 호칭을 예민하게 눈치채는 사람이 종종 있다. 용기 내어 그 이유를 질문하는 사람이 등장하면 정말 반갑다. 레즈비언, 게이, 트랜스젠더, 그 밖의 다종다양한 성적 지향을 실천하고 있는 내 친구들을 자랑할 기회이기 때문이다. “젠더를 걷어낸 언어”를 통해 “시스젠더 이성애자로 살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삶의 방식이 아님을” 말할 수 있는 순간이다. 나는 할 수 있지만 내 LGBTQ+ 친구들이 아직까지는 ‘법적으로’ 할 수 없는 대표적인 일이 결혼이다.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은 세상은 너무도 간단히 “이성애자, 시스젠더, 일대일 관계 지향, 비장애인”만을 보편과 평균의 자리에 놓는다. LGBTQ+는 협소한 선택지 앞에 선다. 안전을 염려하며 커밍아웃하거나, 존재를 지우며 거짓말하거나.
2025년은 그런 의미에서 여러모로 의미 깊은 해로 기억될 만하다. 10월 22일부터 11월 18일까지 진행되는 2025 인구주택총조사는 성별이 같더라도 동거인 항목에 ‘배우자(사실혼)’ 또는 ‘비혼 동거(함께 사는 연인 등)’로 등록할 수 있다. 기존에는 입력조차 불가했던 오류를 바로잡았다. 10월 29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안형준 국가데이터처장은 “통계 조사의 정확성을 기하기 위한 것”이라며 국민의힘 일부 의원의 반발을 일축했다. 이렇게도 덧붙였다. “20년 이상 통계를 해오면서 통계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고 생각하고 있다. 거울이 원치 않는다고 해서 대상을 빼고 비출 수는 없다. 있는 그대로 비추는 게 국가데이터처의 역할이다.”
누군가에게 앎의 가장자리는 이렇게 넓어질 것이다. 교란을 통해서, 불편함을 경유해서.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교란을 ‘마음이나 상황 따위를 뒤흔들어서 어지럽고 혼란하게 함’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언뜻 부정적인 뜻처럼 보이지만, 골똘히 들여다보면 지식과 경험이 만들어지는 순간을 설명하는 말처럼 읽히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교란에 ‘보통과 평균의 범주를 흔들어 상상과 지식의 범위를 넓히는 일’이라는 뜻을 새로 더해 표준을 말하는 사전 위에 겹쳐 놓는다. 다름을 공동체의 위기로 받아들이지 않고 서로의 복잡함을 허용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보다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차별과 혐오로 존재를 지우려는 세상에 질문을 기입해 넣으면서, 사랑과 평등의 등을 힘껏 떠미는 쪽에 서 있고 싶다. 세상은 결국 그 힘으로 나아갈 것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좋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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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호
<시사IN> 기자. 야망은 크지만 천성이 게을러 스스로를 자주 미워한다. ‘망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말 망해 버리고 싶지는 않다. 묻어가는 일에 능하고 드러나는 일에 수줍은 사람. 이토록 귀찮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책 읽고,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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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부록 — 사서일기
안녕하세요. 선유도서관 ‘사이로’ 공간을 담당하고 있는 최가현 사서입니다. 근무 연차는 약 9년, 영등포에서는 4년째 일하고 있습니다. 요즘 제 관심사는 책의 물성과 독립출판물, 그리고 진(Zine)이에요. 어릴 때부터 도서관이 익숙했고, 자연스럽게 책 가까이에서 자라왔습니다. 도서관 봉사를 하며 독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사서 선생님들을 보았어요. ‘도서관이 단순한 책의 공간을 넘어 문화적인 역할도 하는구나’ 싶더라고요. 그때부터 사서라는 직업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입시를 준비할 때 문헌정보학과에 지원했고, 지금은 청소년 공간에서 책과 사람을 잇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릴 적 도서관에서 느꼈던 편안함과 설렘을 아이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결국 지금의 저를 만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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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로’는 선유도서관 2‧3층에 있는 트윈세대 전용 공간이에요. 트윈세대는 초등 5학년부터 중3까지, 어린이와 청소년 사이의 또래를 뜻합니다. 사진존, 게임존, 베이킹존, 음악존 등에서 누구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놀고 탐색할 수 있죠. 이 공간은 도서문화재단 씨앗이 진행한 space T 사업의 일환으로, 서울시 공공도서관 중에서는 선유도서관이 처음으로 참여했습니다. 운영 인력의 지속성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씨앗 재단과 3년 협약을 맺었고, 그 기간 동안 조성, 기획, 운영, 실험의 단계를 충분히 거치며 공간을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사이로’는 ‘집’과 ‘틈’의 개념에서 출발했어요. 아이들이 외부의 시선에서 잠시 벗어나 자기 리듬으로 머물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용자들을 ‘사이러’ 혹은 ‘작가님’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서로를 새롭게 부르고 존중하는 관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더라고요.
청소년이 ‘진짜’ 원하는 것들을 찾아서
공간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건 “청소년이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일까”였어요. 그래서 설문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직접 의견을 들었습니다. 그 결과 세 가지 키워드가 나왔죠. ‘친구랑’, ‘어른 눈치 보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것’. 이 세 가지가 지금의 ‘사이로’를 만든 핵심이에요. 아이들이 스스로 탐색할 수 있도록,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배우는 경험을 목표로 했어요. 도서관을 단순히 ‘책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 경험 중심’의 공간으로 구성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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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일상이 된 도서관
예전엔 트윈세대 친구들이 도서관에 거의 오지 않았어요. 책을 빌리는 곳, 조용한 곳 정도로 여겼죠. 그런데 지금은 먼저 다가와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눠요. 이제 도서관이 아이들의 일상이 된 거예요. ‘사이로’를 통해서 4‧5층 자료실 청소년 이용자 수도 눈에 띄게 늘었는데, 최근 통계로는 약 7배 증가했다고 합니다.
제가 특히 애정을 갖는 곳은 베이킹존이에요. 처음엔 낯설었지만 동아리 활동과 연습을 거치며 점점 재미를 느꼈어요. 시도와 실패가 자연스럽게 허용되는 곳이라, 낯선 경험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참 좋아요. 최근엔 『매일의 영감 수집』을 읽었어요. 일상 속 작은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과정이 인상 깊었습니다. 도서관을 운영할 때도 그런 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손으로 만드는 책, 진(Zine) 작업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사이로’에서 활동하는 작가님들 중에서 언젠가 독립출판 작가가 나오길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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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이' 작가님의 책
사진을 클릭하시면 사이로 작가님들의 다양한 작품을 만나보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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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머물고, 연결되는 공간
아마 이건 선유도서관 직원 모두의 공통된 마음일 거예요. 저희가 꿈꾸는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열람하고 대출하는 공간이 아니라, 다양한 탐색과 몰입의 기회가 열리고 여러 소통이 유기적으로 이어지는, ‘살아 있는 동사’의 형태를 한 도서관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읽고, 탐색하고, 머물고, 연결되는 곳. 결국 도서관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그런 도서관을 함께 만들어가고 싶어요.
✍🏻 선유도서관 ‘사이로’를 방문한 연 마케터의 짧은 후기
카메라를 들고 취재를 위해 ‘사이로’를 방문했는데, 한 청소년 작가님이 저를 바라보며 “사진작가세요?”라고 물어봤어요. 그 순간 ‘아, 여기서는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각 존을 둘러보며 청소년 작가님들의 작품을 보는데, ‘내가 어렸을 때도 이런 공간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왔어요. 공간 곳곳에서 사서님들의 세심하고 다정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이런 곳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내는 친구들은 앞으로 어떤 미래를 그려갈지 궁금해졌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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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간과 여백은 어떠셨나요?
피드백 남겨 주시면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는
북매거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 연 마케터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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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Book Magazine <행간과 여백>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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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엄지혜
에디터 정지연
마케터 김영수, 고운성
-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77-20(문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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