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부단히 유연하게
『강의』 이후 10년 만에 펴낸 신작이었죠. 신영복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 『담론』을 읽었던 게 2015년 봄입니다. 당시 선생님은 간담회 때 “자기 생각을 다 담을 수 있는 책을 만드는 게 참 어렵다. 자기검열을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하느냐, 고민을 많이 했다”고 밝히셨습니다. 인상에 깊이 남았던 답변이 또 하나 있습니다.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관계를 대단히 중요시하는 사람, 자기를 고정시키는 게 아니라 그때 상황이나 만난 사람에 따라 유연하게 자기를 부단히 재조직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하셨습니다.
2026년이 시작되고 벌써 보름이 지났습니다. 한 해의 목표 가운데 혹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도 품으셨나요? 73세의 나이였을 때조차 ‘유연함’을 강조했던 신영복 선생님의 말씀처럼 언제나 열려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을 품어봅니다.
<행간과 여백> 18호는 신영복 선생 추모 10주기 팝업 기획전 <다시, 처음처럼> 소식을 자세히 전합니다. 대전의 고즈넉한 주택 공간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더불어숲’ 기획 전시, 신영복 전집 전시를 비롯해, 김미옥, 김중미 작가님의 강연과 선생님의 서체를 직접 써보는 캘리그라피 체험 등을 마련했으니 현장에서 함께해 주시길 기대합니다. ‘여백’에서는 돌베개의 신간 『나는 왜 늘 인정받으려고 애쓸까』의 한 문장에서 출발한 짧은 단상 ‘작가의 말들’과 장일호 <시사IN> 기자의 연재 칼럼 ‘인간은 모두 죽어요’를 담았습니다.
2026년에도 <행간과 여백>은 매월 한 번, 독자들의 메일함에 변함없이 여백처럼 닿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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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복 선생님이 우리 곁을 떠난 지 어느덧 10년이 됩니다. 그 사이 우리의 삶과 사회는 여러 번 흔들리고 변해 왔지만, 선생님의 문장과 사유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곁을 지켜 왔습니다. 돌베개는 신영복 선생님의 추모 10주기를 맞아, 새로운 독자의 탄생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팝업 기획전 〈다시, 처음처럼〉을 준비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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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새로운 탄생입니다.
필자의 죽음과 독자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끊임없는 탈주입니다.”
(신영복, 『처음처럼』 중에서)
선생님은 곁에 없지만, 남겨진 문장은 지금도 새로운 독자를 만나며 다시 태어납니다. 2026년 1월 15일, 그 탄생의 순간을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문장이 이어져 숲이 되는 자리 🌳
〈다시, 처음처럼〉 전시는 대전의 고즈넉한 주택 공간에서 열립니다. 선생님의 문장을 읽고, 독자님의 문장을 잎사귀에 적어 전시장에 붙여 주세요. 하나의 문장이 또 다른 문장을 만나며, 전시 공간 안에 ‘더불어숲’이 자라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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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사귀는 책갈피로도 가져가실 수 있습니다!
다양한 문장의 잎사귀들이 모여,
시간이 흐를수록 더 무성한 숲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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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클릭하시면 프로그램 신청 구글 폼으로 들어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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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 🌿
🌱 선생님의 문장과 독자님의 문장이 이어지는 〈더불어숲〉 기획 전시
📖 김미옥 작가, 김중미 작가의 강연 프로그램
✍🏻 선생님의 서체를 직접 써보는 캘리그라피 체험
📚 10주기를 기념하며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드는 신영복 전집 전시
🎁 엽서, 책갈피 증정
문장을 읽으며 천천히 머물 수 있도록 따뜻한 차도 준비해두었습니다. 🍵 대전에 계신 독자님, 혹은 대전을 방문하실 예정이라면 대전 중구 중교로 40에 들러 선생님의 문장과 함께 10주기를 맞이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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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위해 준비한 신영복 서화 도장으로 책갈피와 엽서를 꾸며보실 수 있어요!
실제로 보면 더 귀여운 도장, 기획전에서 자유롭게 찍어가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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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삼독>(書三讀)
책은 세 번 읽어야 합니다.
먼저 텍스트를 읽고,
다음 그 텍스트의 필자를 읽고,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독자 자신을 읽어야 합니다.
신영복 선생님의 독서법으로 잘 알려진 것이 바로 ‘서삼독’(書三讀)입니다. 책을 세 번 읽는다는 뜻으로, 첫째는 텍스트를 읽고, 둘째는 그 텍스트의 필자를 읽고, 셋째는 최종적으로 독자인 ‘자신’을 읽는다는 의미이죠. 신영복 선생님의 책을 읽는 것이 첫 번째 독서라면, 『신영복 다시 읽기』는 그 텍스트의 필자인 신영복을 읽는 ‘두 번째 독서’에 해당합니다. 이 책을 통해 마지막 단계인 ‘자기 자신을 읽어 내는 독서’에 이르시기를 기대합니다.
“선생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어떤 80대 노인이 이런 말을 했대요.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작년에 내가 했던 생각이 틀렸던 것 같아.” 이 노인은 그 나이에도 공부하고 변화하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지요. 공부는 자신이 갇혀 있는 문맥을 깨트리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많은 문맥에 갇혀 있어요.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익힌 것들, 이것이 옳다고 배웠던 것들이 우리의 사고를 틀 지우는 문맥을 만듭니다. 거기서 벗어나야 성찰과 변화가 가능합니다. 그래서 선생은 ‘공부는 망치로 하는 것’이란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내가 갇힌 사고의 문맥을 망치로 깨트리는 것에서 공부는 시작됩니다.”(『신영복 다시 읽기』, 33쪽)
** 현재 알라딘에서 북펀딩이 진행 중이며, 〈다시, 처음처럼〉 팝업 기획전에서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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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어떤 사람인지나 무엇을 느끼는지보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더 중요해.”
이런 ‘이미지 메시지’는 건강한 자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것은 나르시시스트 어머니의 내면 깊은 불안과 연약한 자존감에서 비롯된다.”
(『나는 왜 늘 인정받으려고 애쓸까』 캐릴 맥브라이드 지음, 돌베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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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한 문장이 눈에 덜컥 들어왔다. 소싯적 내가 주구장창 외쳐댔던 말의 등장. 바로 이 책의 5장 제목 ‘이미지가 전부야’. 사람들은 누구나 이미지로 타인을 판단하니, 어떻게 보여지느냐를 무시하고 살 수 없다는 말. 세뇌 당한 말은 아니었지만 자주 생각했다.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판단 당하는 것이 사람이라는 존재니, 어떤 이미지로 읽히는가를 무시할 수 없다고.
지난해 요주의 인물 한 명을 만났다. 훤칠하고 겸손하고 말투도 글투도 온화한 편, 모두에게 호감을 주는 첫인상. 나 역시 착각 속에 관계를 맺었는데 딱 2주 만에 그의 본색을 파악할 수 있었다. 말은 예쁘게 하는데 행동은 안 예쁜 사람. 말본새는 예의가 넘치는 듯하나 행동이 따라주지 않았다. 자신이 불리할 때는 바짝 엎드려 너스레를 떨면서도 기분이 상하면 즉각 정색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어쩌다 나는 이 사람과 엮였을까, 며칠 한탄하다가 반면교사로 삼기로 했다. 최소한 저런 두 얼굴로 아이를 대하진 말자, 상과 벌을 동시에 주는 혼란을 아이에게 주지 말자고 마음먹었다.
캐릴 맥브라이드가 쓴 『나는 왜 늘 인정받으려고 애쓸까』의 부제는 ‘나르시시스트 엄마로부터 벗어나 나답게 서는 법’이다. 원제는 ‘Will I Ever Be Good Enough’. 2011년 이 책이 처음 한국어로 번역 출판됐을 때 제목은 『과연 제가 엄마 마음에 들 날이 올까요?』였는데, 평생 잊지 못할 제목이라고 생각했었다.
책에 등장하는 나르시시스트 엄마가 나에게도 있다. 성별은 다르고 가족관계도 아니다. 자신의 기분이 좋을 때는 친절을 베풀고, 조금이라도 마음이 상하면 얼굴색, 말투가 순식간에 바뀌는 he. 나는 그의 “깊은 불안과 연약한 자존감”을 목격할 때마다 연민이 생기곤 하지만, 건강한 경계선을 그어놓고 함부로 침범하지 못하게 보초를 선다. 나는 그로부터 인정 받기를 조금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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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남자 잡아먹는 사주’라는 게 있다고 한다. 그 사주를 타고났다는 사람이 바로 나다.
동거인의 어머니가 우리 몰래 궁합을 봤다는 얘기를 들은 건 결혼하고 3년쯤 지난 후였다. 식사 자리에서 그 얘기를 듣다가 폭소했다. 고작 그 이유로 결혼을 반대했었다는 말에 나는 깔깔대며 동거인에게 말했다. “너는 죽음을 무릅쓰고 나한테 왔구나.” 그다음 말은 웃음기를 거두고 건넸다. “어머니, 인간은 다 죽어요.”
계획이나 목표를 세우는 일에 취약한 편이라서일까. 나는 미래를 크게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늘을 살려고 노력한다. 미래는 오늘이 만드는 거니까. 웃으며 의연하게 상황을 넘겼다고 해서 상처받지 않은 건 아니었다. 점괘를 믿진 않지만, 말에 깃든 힘은 믿기 때문에 한 번씩 미치도록 화가 나기도 한다. 때때로 나와 동거인의 관계가 수렁에 빠질 때면 특히 그렇다. 그 점괘가 내게 검질기게 달라붙어 옭아매는 기분이 든다. 동거인과 새해 첫날부터 신나게 다퉜는데, 그때도 저 말이 악몽처럼 떠올랐다. 돈을 받으면서 나쁜 말과 불안을 파는 ‘역술 산업’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용서할 수 없다.
명리학을 공부하는 지인은 아직도 “그딴 식으로” 말하는 “업데이트 안 된” 역술인이 있다는 것을 몹시 놀라워했다. 남성 쪽 사주가 강해서 여성을 힘들게 한다면 같은 표현을 쓰나? 이런 표현은 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여성 쪽을 탓하고 통제하기 위해 동원되는 서사로 명백한 여성혐오, 성차별적 표현이다. 지인의 풀이에 따르면 실제 내 사주에는 ‘백호살’이 들어있는데, 주도적이고 자존감이 높으며 독립성이 강한 사주로 분류한다. 커리어와 삶에 대한 기준이 분명해서 갈등을 방치하지 않다 보니 강해 보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니까 같은 사주라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삶을 부축할 수도 있고 사람을 낙인찍을 수도 있다.
<한국일보> 탐사보도팀인 액설런스랩의 세 기자가 쓴 『방치된 믿음』(이성원 외 지음, 바다출판사)은 한국 사회 곳곳에 파고든 무속의 영향력을 속속들이 살펴본 책이다. 이들은 무속인 범죄 10년 치 판결문 320건을 바탕으로 피해자를 찾아내 직접 인터뷰하는가 하면, 판결문을 분석해 이전에 없던 통계를 정리하기도 했다. “무속인이 대출 및 투자 사기를 가장 많이 저지른다는 점, 피해자들이 건강 문제로 무속인을 가장 많이 찾는다는 점, 무속인이 불안감을 조성해 피해자를 가스라이팅한다는 점, 무속 범죄 무죄율이 10%에 가깝다는 점 등을 밝혀냈다.”
무엇보다 무속이 전통이나 풍습을 넘어 거대한 시장으로 기능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공식 통계는 없지만, 운세 시장 규모는 1조4000억 원에 달한다는 추정치가 나올 정도다. 가장 큰 시장 확장 이유로는 역시 온라인이 손꼽힌다. “과거에는 입소문으로 손님이 찾아왔지만 이제는 유튜브, 점술 앱, 온라인 상담이 시장을 장악했다. 요즘 젊은 사람은 사주도 미리 검색해서 다 알아보고 온다. 예전에는 감으로 점을 봐도 됐지만 이제는 공부를 제대로 안 하면 손님에게 금방 들킨다.”
길흉화복을 점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상담자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요즘 무속인들의 특징이다. 이를 ‘힐링 신점’이라 마케팅하기도 한다. 기자들이 만난 어떤 무당의 경우, 손님이 찾아온다고 해서 무턱대고 점을 봐주지 않는다. 사연에 따라 심리 상담이나 정신건강의학과를 권유하기도 한다.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터부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문턱이 높은 것도 사실이다. 진료에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들여야 하다 보니 예약 자체가 어렵기도 하다. 치료를 시작해도 당장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도 환자를 조바심 나게 한다. 어쩌면 그런 현실이 복합적으로 점술 업계 전반을 계속 성장시키는 건 아닐까. 대중문화에서 무당을 다루는 방식이 변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오늘날 무당은 천만 영화 <파묘>가 보여주듯 타인을 돕는 존재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에어리 쿠르굴란스키가 제시한 개념인 ‘인지적 종결 욕구’(Need for Cognitive Closure)에 따르면, 우리는 대개 불확실함이나 모호함을 잘 견디지 못한다. 확실하고 명확한 결론을 선호한다. 인지적 종결 욕구가 큰 사람일수록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해 합리적이지 않은 결론을 받아들이기도 한다. 무속이 여전한 영향력을 갖는 데는 점점 더 불확실해지는 사회경제적 원인 역시 한몫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믿음’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성찰적으로 점검해 봤으면 좋겠다. 출판사 민음사가 만든 플리케이션 ‘세계문학일력’이 1월1일 띄운 문장은 앙드레 지드의 『새로운 양식』에서 발췌한 것으로 다음과 같다. “사람들이 그대에게 제안하는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삶이 더 아름다울 수 있음을 항상 굳게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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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호
<시사IN> 기자. 야망은 크지만 천성이 게을러 스스로를 자주 미워한다. ‘망했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말 망해 버리고 싶지는 않다. 묻어가는 일에 능하고 드러나는 일에 수줍은 사람. 이토록 귀찮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가 궁금해서 책 읽고, 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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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간과 여백은 어떠셨나요?
피드백 남겨 주시면 계속해서 발전해 나가는
북매거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연 마케터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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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Book Magazine <행간과 여백>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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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엄지혜
에디터 정지연
마케터 김영수, 고운성
-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77-20(문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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