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는 글
이렇게 마음 좋은 사람들을 보았나
오랜만에 만난 후배가 물었습니다. “선배는 어떤 저자를 인터뷰할 때가 가장 좋아?” ‘가장’이라는 조건을 붙이니 답이 쉽게 나오지 않았습니다. 책이 좋다고 무조건 저자도 매력적이라는 법은 없고, 매끈한 문장을 쓰는 저자라고 반드시 말주변이 뛰어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하다 짧게 답했습니다. “솔직한 사람이 좋지. 10만큼 느꼈으면 딱 10으로 표현하는 사람. 그리고 말주변보다 중요한 건, 내 질문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고 답하는 사람이 좋아.”
후배와의 대화가 떠오른 건, 『인생여전』을 쓴 양성민 저자의 인터뷰 답변이 무척 좋았기 때문인데요. 그는 첫 책을 받았을 때, “뿌듯하다는 느낌보다는 출판사와 편집자에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며, 출간 일주일 후 초판 인세를 받고는 “책도 만들어주고 돈도 주다니 이렇게 마음 좋은 사람들을 보았나, 생각했다”고 합니다. “글을 쓰는 건 저자이지만 책을 만드는 일에는 출판사와 편집자의 역할이 훨씬 크다는 걸 느꼈다”고 말하는 저자의 이야기에 퍽 동의했습니다.
‘행간과 여백’ 21호에서는 『인생여전』을 쓴 양성민 작가 인터뷰, 『나는 전쟁에 불복종한다』 최우현 작가의 ‘얼굴들’ 북토크 현장 스케치, 작가의 말들, 장일호 <시사IN> 기자의 칼럼을 담았습니다. 21호에는 조금 묵직한 이야기들이 많이 실렸는데요. 4월이라 그런 걸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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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노동과 글쓰기’ 참으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그건 지독한 편견이라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닫습니다. 노동으로 삶을 이어가는 모든 이들에게 권하고 싶은 에세이 『인생여전』을 쓴 양성민 작가를 만났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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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단독 저서입니다. 소감이 궁금해요.
3월 13일에 책이 도착했습니다. 책을 손에 집어 들고서야 실감했어요. 편집자께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오탈자 교정부터 잘못된 정보의 지적, 과도해 보이는 표현 등 여러 의견 덕분에 제 글은 처음과는 완전히 다른 무엇으로 바뀌었어요. 또 제목과 부제의 선정, 유쾌하게 그려진 표지와 본문 디자인, 애정 있는 소개 글까지. 출판사 분들께 큰 빚을 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책을 쓰고 나니 평소와 다른 태도가 되더군요. 예전의 저는 책을 사면 덜렁거리는 띠지를 바로 벗겨내 버리거나, 책갈피로 사용했어요. 책 표지는 넘기기 쉽게 꾹꾹 눌러 접곤 했고요. 책을 접는 걸 싫어하는 친구를 보면 ‘거참, 인생 힘들게 산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제 책이 나오니, 달라지더군요. ‘띠지는 왜 이렇게 얇은 종이로 만들었지?’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살살 조심조심 벗겨내어 구겨지지 않게 따로 보관했습니다. 책 표지는 결코 접을 수가 없었습니다.(웃음) 페이지도 절대로 45도가 넘지 않도록, 행여나 접힐까 구겨질까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조심조심 보고 있습니다.
프로필 문구 중 “나는 뭐 일반 아니고 특별반이냐”, 이 문장이 인상적이었어요. ‘투덜투덜’이라는 단어를 넣은 것도요. 후일담이 궁금합니다.
편집자님과 출간을 준비해 보기로 하고 원고를 한창 써야 할 시점에 윤석열과 그 일당들의 친위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원래 책에는 ‘155분’이라는 제목으로 쿠데타의 밤에 피난을 떠나야 할지 모른다며 가방을 싸던 이야기를 넣었었는데, 다른 글들의 주제와 안 맞아 생략했어요. 온 국민이 2차 쿠데타를 걱정하며 전전긍긍하던 3개월. 원고를 써야 하는데 뭔가 머릿속이 복잡하고 참 그랬습니다. 방송에는 참으로 많은 응원봉 시위 소식이 흘러나왔는데, 시위 소식마다 “민주노총 조합원과 시민단체들 회원뿐만 아니라 일반시민들도 많이 참가했다”는 이야기가 들렸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 노동삼권이 그리고 결사의 자유가 버젓이 보장되어 있지만, 노동조합 조합원이거나 시민단체 회원이라면 뭔가 특별인 취급을 받는 이 현실이 불만스럽기도 했고, 그 ‘일반시민’이라는 표현은 계엄사령관의 포고령에도 ‘선량한 일반국민’(포고령 6호 / 반국가세력 등 체제전복세력을 제외한 선량한 일반 국민들은 일상생활에 불편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한다)으로 다시 등장하는 것을 보며 더더욱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단순하게 프로필 형식으로 써봤습니다.
그리고 ‘투덜투덜. 쩝’ 이런 문구들을 더러 넣었는데, 만화적인 표현입니다. 만화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은 좀 어색하게 읽으실 수 있겠지만, 만화방에서 유년을 보낸 저와 제 친구들은 그럭저럭 친숙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끄덕끄덕.
현장노동자로 일하며,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수상 소감문에도 밝혔지만,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친구들의 질문에 제가 여기저기에서 일한 이야기를 해주곤 했습니다. “사람 묻어봤냐?”라는 이야기를 꺼낼 때 다들 반응이 제일 좋았습니다. 가로 75. 세로 240. 구덩이가 말이야. 사이즈가 있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다들 좋아했고 “글로 써보라”는 주문이 많았습니다. 꼭 그 때문만은 아니지만, 어쨌든 재미있는 이야기나 에피소드가 있으면 일기장에 짧게 기록했죠. 좋은 표현이나 문구가 생각나도 핸드폰 메모장이나, 카톡 방에 틈틈이 메모해두었다가, 주말에 일기장에 옮겨 적곤 했습니다. 언젠가는 정리해서 글을 만들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아놓은 일기장의 내용들을 바탕으로 글을 구성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원고가 그냥 작성되진 않았습니다. 특별한 계기가 있어야 하나의 원고가 되곤 했습니다. 은유 작가님의 말처럼 ‘마감 시한’과 ‘독자’가 있어야 생각이 구체적인 원고로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인천의 한 노동상담소 소식지에 보낼 원고라거나 부산의 한 노동인권 단체의 소식지에 원고를 쓸 기회가 있었고 그 덕에 몇몇 에피소드를 원고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많은 운이 따라줬어요. 원고에 대한 주변 반응이 좋기에 꼼꼼히 더 수정해서 문학상에 투고했는데, 덜컥 당선된 거죠. 이후 <경향신문> 인터뷰를 했고, 기사를 읽은 돌베개 편집자께서 글을 요청하셨습니다. 이어 책 계약을 한 뒤 6개월의 마감 시한이 주어졌고, 그 덕에 나머지 원고를 정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운이 9할이고, 저의 노력은 1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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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와 에세이 쓰기, 어떻게 달랐나요?
어디부터가 르포이고 어디까지가 에세이인지 저도 잘 구분이 안 됩니다. 하지만 문학상에 투고한 단편 구성과 책 원고를 구성하는 건 차이가 있었습니다. 소식지에 보내거나 문학상에 투고한 원고를 정리할 때는 최대한 한 편 한 편이 독립적이고 그 자체로 기승전결이 완결된 구조를 엮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글 분량도 최대한 줄이고 장황한 스토리가 되지 않도록 애를 썼죠. 쓸 때는 어려웠지만 뭔가 깔끔한 원고가 된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책을 내기로 하고 쓴 원고들은 기승전결에 좀 덜 얽매이지 않았나 싶어요.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편하게 서술할 수 있었고요. 하지만, 책이 나오고 다시 읽어보니, 쓰는 이가 편안하고 즐거운 것과, 읽는 이가 편안하고 즐거운 것은 약간 다른 문제가 아닌가 생각했어요.(웃음)
‘제32회 전태일문학상’ 르포 부문 수상 소식을 듣고, 『전태일 평전』을 읽으셨다고요. 한 독자가 『인생여전』을 읽고, 노동에 관한 또 다른 책을 권해달라고 한다면, 어떤 책을 추천하고 싶나요?
늦게나마 읽은 『전태일 평전』, 김진숙 님의 『소금꽃나무』, 최근에 접한 천현우 님의 『쇳밥일지』가 떠오릅니다. 제 책의 추천사를 써 주신 한승태 님의 『고기로 태어나서』도 떠오르고요. 원고의 배경이 되어준 책도 소개한다면, 홍세화 선생님의 『결: 거칢에 대하여』와 박노자 님의 『당신이 몰랐던 K』도 추천합니다. 또 학력 계급사회의 현실과 그 원인을 설명한 김누리 교수님의 『경쟁교육은 야만이다』와 마이클 샌델의『공정하다는 착각』은 가급적이면 꼭 함께 읽었으면 합니다. 오만한 엘리트와 모멸감에 휩싸인 노동계급이 어떻게 생겨나고 어떻게 변하는지 아주 쉽게 설명하는 책들입니다.
또 현대의 귀족 엘리트 사회가 어찌 재생산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재미가 있는 『특권』, 가난한 노동자 계급이 어떻게 사회적 혐오의 대상이 되어갔는지를 설명하는 『차브』와 법정 스님의 법문집 『일기일회』와 김용옥 선생님의 『금강경 강해』 등도 권하고 싶어요.
『인생여전』에서 작가님의 마음을 가장 많이 대변한 문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대기인」이라는 제목의 에피소드가 가장 좋습니다. ‘추적거리는 여름 오후 / 낮 기온 29.5도 / 얼음 커피가 먹고 싶다.’라는 표현이 (다른 분들은 어찌 보일지 모르겠지만) 참 잘 썼다고 혼자서 생각 중입니다. 왜인지는 딱히 설명이 잘 안 되는데. 그냥, 좋습니다. 즐거움과 슬픔, 기쁨과 허망함이 어우러져. 딱히 알쏭달쏭하고, 정리가 되지 않는 제 심리 상태를 적절히 보여주는 문장인 것 같습니다.
각별히 『인생여전』을 추천하고 싶은 대상이 있나요?
제 또래 친구들이 함께 공감하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내용이지 않을까 싶어요. 추가하자면 꿈을 이루지 못했거나, 꿈을 찾지 못했거나 하는 스무 살에서 서른 살 무렵의 청년들이 참고 삼아 읽어볼 만한 꼰대 이야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두 번째 책을 쓴다면요.
살면서 내 이야기를 담은 책 한 권을 냈으면 됐지 뭘 또 두 번째 책이 필요한가 싶은데요. 그래도 만약 새로이 써낸다면, 노동하면서 겪는 에피소드가 지금도 하나씩 쌓이고 있으니 계속 써보면 어떨까 싶고요. 두 번째로는 십여 년간 노동상담소 및 노동인권 단체에 근무하며 느낀 바와 에피소드를 엮어봐도 좋을 것 같고, 세 번째는 어머니의 노동 일기를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해 볼까 싶어요. 마지막으로는 과거 함께했던 한 투쟁을 소재로 한, 시나리오 형태의 투쟁기를 써보고 싶습니다. 한 국립대학교에서 있었던 해고된 경비원 미화원들의 복직투쟁기인데요. 이분들이 52일간 총장실이 있는 본관 건물에서 농성을 벌이셨죠. 현재까지는 제목만 생각해 놓았을 뿐 아무런 글도 쓰진 못했습니다. 가제는 「52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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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설, 제조 등 여러 형태의 노동현장에서 일용직이나 단기계약직으로 일하며 살고 있다. 배관기능사, 용접기능사, 특수용접기능사 자격증이 있지만 주로 보조공으로 일해 왔다. 노동조합 등 노동 및 인권 관련 단체에서도 일했다. 지난 10여 년간 경남 진주시에 살았다. 남강과 진주성 그리고 지리산 둘레길을 사랑한다. 노동조합의 조합원이며 한 정당의 당원이고, 시민단체 한 곳과 독립언론사 한 곳의 후원회원이다. 제32회 전태일문학상 르포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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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일호(이하 ‘장’): 작년 10월에 책이 나왔을 때 바로 읽고, 그 충격을 나누고 싶었어요. 반년이 지난 지금,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이 일어나며 ‘시의적절하다’는 말이 다시 떠오른다는 사실이 슬프게 느껴집니다.
최우현(이하 ‘최’): 전쟁을 막고 싶어서 쓴 책인데, 전쟁이 일어나니 북토크가 생긴다는 사실이 서글펐어요. 그래도 이렇게 모여 연대해야 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군 복무 중 생긴 이명 때문에 전쟁과는 절대 타협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반대편에서 전쟁을 겨누는 새로운 군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물음표를 간직하는 사람
장: 책에서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아니 고통 자체에 무감각한 얼굴”(18쪽)이라고 쓰셨는데, 반대편으로 서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최: 저를 바꾼 단 하나의 특별한 사건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인사장교로 복무하며 자해로 사망한 병사의 사건을 처리했을 때, 손가락이 잘린 포반장을 봤을 때. 이상하게도 그 기억들만 뜨문뜨문 남아 있어요. 충격이었겠죠. 자살로 죽은 병사의 영결식에서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이 울려 퍼지잖아요. 반박할 수는 없는데, 어딘가 불편하고 찝찝한 물음표가 생기는 거예요. 전역 후 병을 앓으면서 그 감정에 분노가 더해졌고요. 군대를 자랑스럽게 전역했다고들 하는데, 왜 나는 이렇게 화가 나고 의심스러운가. 그걸 해석하려고 책을 읽었고, 그 과정에서 조금씩 답을 찾아갔습니다. 서서히, 서서히.
장: 그 물음표를 간직하는 태도가 중요했던 것 같아요. 질문이 생긴다고 해서 모두가 그것을 붙잡고 있지는 않거든요. 동시에 ‘이런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오래 복종하며 살았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최: 복종해서 얻을 수 있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만약 12·3 계엄 때까지 군 생활을 하고 있었다면, 그 복종이 제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불복종은 단순히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주 단순한 문제예요. 군인은 어떤 경우에도, 계엄 상황이라 해도 시민에게 총을 겨눌 권리가 없습니다. 계엄법이 헌법에 우선하지도 않고요. 장비에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이 무기는 국민의 세금으로 구입한 것임.” 국민의 것으로 마련된 무기를 국민에게 겨눈다는 것, 그 자체가 성립할 수 없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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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불꽃놀이가 아니다
장: 한국 언론이 이번 전쟁 보도에서 가장 많이 다룬 단어가 트럼프 대통령 발언, 그다음이 한국 주식시장이라고 하더라고요. 전쟁 보도를 어떻게 보고 계세요?
최: 전쟁을 ‘시청자 모드’로 강요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밤하늘에 탄이 날아가고, 미사일이 날아가고, 어딘가에서 폭발이 일어나죠. 그리고 전문가들이 등장해 거시적인 시야에서 전쟁을 설명합니다. 참혹하다고 말하면서 불꽃놀이 같은 장면을 보여준다면, 무엇이 참혹한지 제대로 전달될 수 있을까요. 자극적이라서 보여주지 않는다고 하지만, 전쟁이 지옥이라고 말하려면 그 참혹함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트라우마가 걱정된다고 하지만, 전쟁의 참상을 본다면 당연히 트라우마를 느끼게 되는 거죠. 그래야 “너무 참혹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무기가 날아가는 장면이야말로 더 자극적인 보도입니다. 아이들에게 전쟁은 불꽃놀이 같은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으니까요.
연대는 언제나 있다
장: 아는 것을 연대로 이어가는 힘은 어디서 나온다고 보세요?
최: 제가 따로 힘을 낸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이미 다른 분들이 앞장서고 계시고, 저는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찹니다. 연대는 이미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안에서 서로 힘을 주고받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잘해서라기보다, 그 연대 안에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연대는 언제나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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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북토크 내용은 위 영상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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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도 무던하게 자기가 맡은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은 참 멋지고 좋다.
자잘한 것은 그냥 느끼지도 않고 넘어가게 역치가 높은 사람이 건강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참고 또 참아라, 이 정도도 견디지 못하면 어떻게 하냐’며 스트레스를 표현하는 길을 막아놓는 것은 좋지 않다. 많은 경우 방어기제로 자동적으로 걸러지지만, 표현해야 할 때는 표현해야 건강이 유지된다는 것도 인정했으면 한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나를 바꾸는가』 하지현 지음, 어크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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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감 찾기 삼매경’에 빠진 글쓰기 수강생이 메일을 한 통 보내왔다. 자신이 가진 글감 리스트를 쭉 소개하며 “작가님이 보시기에 가장 독자가 많을 것 같은 소재는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동안 수업을 하면서 ‘독자중심주의’를 너무 외친 탓인가. 그래도 필자의 마음, 의지, 생각보다 중요한 건 없는데. “다 좋은데요. 일단 지금 가장 빨리 쓸 수 있는 소재부터 시작하는 게 좋아요. 툭 건드려도 후루룩 나오는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부터 쓰세요. 물론 감정에 취해서 쓰진 말고요. 정리된 마음의 상태를 써야 해요.”
“말해, 말하라고, 제발!” 스스로에게 외쳤던 시절이 있다. 힘들어도 태연한 척, 묵묵히 살아가는 게 어른의 태도라고들 하지만 속이 썩고 있는데, 입을 꾹 닫고 있는 것만큼 한심한 전략은 없으니까. 글이든 말이든, 풀어야 사니까. 믿을 만한 선배를 만나 하소연을 하고, 언제나 평정심을 유지하는 친구를 만나 마음을 드러내면 마음이 풀렸다. 만날 상대가 없을 때 특효약은 '메일 쓰기'다. 수신자를 나로 설정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제하지 않고 펼쳐 놓으면 해장을 한 기분이 들었다. 머릿속에서 둥둥 떠다니기만 했던 번민을 활자로 풀어내면, 지금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선명하게 보였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말한다. 몸을 쓰거나 감각을 자극해 현재 상태를 끊어라. 이를테면 호흡, 명상, 스트레칭, 운동을 하거나 환경(장소) 을 바꾸면 생각의 루프가 변한다는 것.
여기에 한 줄 더 보태고 싶다. 타자를 신나게 칠 것. 말해야 할 때는 쏟아낼 것. 표현하는 일에 주저하지 않을 것. 그래야 인간은 버틸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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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
길을 만든 여자
장일호 <시사IN> 기자 (@ilhostyle)
2009년부터 매년 빠짐없이 제주올레를 걸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풍경이지만, 아무리 걸어도 편의점은커녕 구멍가게 하나 나오지 않던 때였다. 민박집 주인이 챙겨준 얼린 생수와 주먹밥을 들고 씩씩하게 나섰다가 녹초가 되어 돌아온 밤에는 낯선 사람 틈에서 잘도 잤다. 돌이켜보면 힘든 기억밖에 없었는데 이상하지. 그때부터 틈만 나면 제주로 갔다. 화내면서 걷고, 노래하며 걷고, 울면서 걷고, 비 맞으며 걷고, 땡볕 아래를 걸었다.
올레 3코스(온평-표선 올레)는 딱 한 번만 간 유일한 코스다. 2010년 엄마와 함께 걸었다. 걷는 내내 싸우다가 진지하게 ‘고려장’을 고민했다. 마침, 휴대전화도 방전돼 있었다. 엄마를 버리기에 절호의 기회라 여겼다. 못 따라올 만큼 빠르게, 한참을 내질러 걸었다. 그러다 돌아봤는데 정말 엄마가 보이지 않아서 덜컥 겁을 먹었다. 되짚어 걸으며 엄마 잃은 아이처럼 울었다. 실제로 그러했으므로. 아무도 다니지 않는 한여름의 땡볕 아래 익을 대로 익은 엄마도 주저앉아 울고 있었다. 나는 그 길에 엄마 대신 미움과 서러움 같은 것들을 묻어두고 왔다.
2015년에는 애인과 걸었다. 8코스(월평-대평 올레)부터 10코스(화순-모슬포 올레)까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코스로 골랐다. 내 것도 아닌데 자랑하고 싶은 풍경이 많아서 자꾸만 빨라지는 발걸음을 애인은 자주 멈춰 세우곤 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걸으면서 내가 얼마나 목표지향적인 사람인지 알게 됐다. 도착점까지 걷는 데 몰두하는 나와 달리, 애인의 걸음은 더뎠다. 벌레가 갉아 먹은 나뭇잎 모양이 특이해서, 예쁜 모양의 돌이 있어서, 육지에서는 본 적 없던 꽃이 고와서…. 덕분에 그동안 ‘완주’만 하느라 보지 못했던 올레의 다양한 표정을 만났다. 쉬엄쉬엄 걷는 동안 알게 된 풍경이 ‘함께’를 다짐케 했다. 험한 길도 같이 걸으면 더 재밌었다. 우리는 길 위에 평생으로 가는 하루들을 놓았다.
올레길 리본에 사연 한두 개쯤 얽어둔 사람이 나 하나뿐일까.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올레를 걸은 사람 수는 1300만 명. 해마다 약 4500명은 ‘완주’까지 해낸다. 지난 20년, 제주의 풍경은 간세다리(게으름뱅이) 올레꾼들의 걸음이 바꿨다. 제주올레 덕분에 제주 전체를 도보로만 여행할 수 있게 됐다. 2007년 9월 시흥리 버스정류장에서 광치기해변까지(1코스) 15.1km로 시작한 제주올레는 총 길이 437km, 27코스까지 개장됐다. 뿐만 아니다. 제주올레는 내게 일상의 길도 여행지처럼 낯설게 보도록 가르쳤다. 올레를 걷고 나면 한동안은 모든 곳이 올레로 보이곤 했다. 발길 닿는 이곳저곳에 ‘나만의 올레’를 만드는 동안 삶에도 반짝반짝 윤기가 깃들었다.
그리고 서명숙. 제주올레의 시작에 서명숙이 있다. 내가 가진 ‘복’이라는 게 있을까. 있다면 등을 보고 따라 걸을 수 있는 선배들이 전부다. 서명숙은 내가 아는 여자들 중 가장 멋진 등을 가진 여자다. 몇 해 전 봄 짧은 일정으로 불쑥 내려간 제주에서 서명숙은 기꺼이 또 한 번 등을 내주었다. 그의 뒤를 따라 인적 드문 고살리숲길을 걷는 동안 어지러운 마음이 제자리를 찾았다. 지칠 줄 모르고 쉼 없이 이어지는 서명숙의 이야기는 마치 노랫말 같았다. 여자들에게 롤모델은 언제나 귀한 것이고, ‘나이 든’ 여성 롤모델은 더 귀하다. ‘여자라는 이유로’ 수많은 언론계 최초의 타이틀을 갖고 있는 서명숙은 종종 마음이 꺾이곤 하는 내게 당부하곤 했다. 스스로 포기하면 누구도 도와주지 못한다고, 포기하지 않는 이상 연대해야 한다고, 여자들이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그런 이야기를 널리 전하는 일을 하라고….
길을 만든 여자는 길이 된다. 4월 7일 서명숙이 또 다른 길을 나섰다. 향년 68세. 이승을 떠나며 꼬닥꼬닥 새로운 길을 개척할 생각에 신났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아프지 않은 몸으로 자유롭게 걸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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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간과 여백>은 어떠셨나요? 어떤 이야기가 기억에 남으셨는지 궁금합니다.
궁금한 것이 많은 마케터는 늘 여러분의 이야기를 기다립니다. 💛 남겨주시는 소중한 피드백을 바탕으로, 더 나은 북매거진을 만들어가겠습니다.
늘 고맙습니다. 😻
_연 마케터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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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베개 Book Magazine <행간과 여백>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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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엄지혜
에디터 정지연
마케터 김영수, 고운성
- 경기도 파주시 회동길 77-20(문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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